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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홍섭의 물바람 숲] 4대강 이어 백두대간의 신음 들릴라

등록 2015-07-22 18:42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크레이터 레이크 국립공원은 해마다 50만명 이상이 찾는 유명 관광지다. 백두산 천지처럼 생겼지만 규모는 그 2배쯤 되는 고산 칼데라 호수인데, 코발트빛 물과 가파른 절벽이 빚어내는 절경이 구경거리다. 게다가 화산 꼭대기에는 제법 큰 산장이 있어, 객실 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편안히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을 발표하면서 산지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한 산악호텔의 보기로 든 곳이 바로 이 산장이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이나 설악산 정상에도 규제를 풀고 이런 시설을 지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 산장은 꼭 100년 전인 1915년 지은 시설로서 국가역사유적으로 등록돼 있다. 집을 고쳐 객실이 71개인 고급 숙박시설인 것은 맞지만, 미래 세대에 물려줄 유산이어서 유지하는 것이지 지금이라면 결코 허가를 얻지 못할 시설이다. 요즘 기후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 때문에 산장 쪽은 숙박객에게 텀블러에 물을 채워 오도록 요구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산악관광 활성화 정책을 제안하자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착착 제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풍부한 산악자원을 보유하면서도 규제가 너무 심해 관광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선진국처럼 산장, 산악열차, 케이블카, 레스토랑 등을 ‘놀고 있는’ 산악에 적극 도입해 관광산업을 일으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본받을 사례로 든 선진국의 산악관광 시설 상당수는 우리와 자연적, 문화적 맥락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전경련은 ‘산악관광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에서 외국에선 산과 절벽의 절경에도 호텔을 짓는데 우리는 불법이라며 스페인 파라도르 론다 호텔과 이탈리아 포시타노 지역 호텔을 들었다. 그러나 120m 절벽 위에 자리잡은 론다 호텔은 로마시대 때 개발된 곳이고 가파른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들어선 포시타노 건축도 16세기 중세 때 유적이다. 사실,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져 수백년을 내려온 시설이라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 국립공원 안 사찰이 그런 곳이다. 휴양시설을 무분별하게 보호구역 안에 짓기에 앞서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휴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산악관광의 미래상처럼 정부와 기업이 치켜세우는 알프스 산악도 마찬가지다. 알프스는 유럽 한가운데 위치해 연간 1억명이 찾는 100년 이상의 관광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런데 절경에 들어선 숙박시설과 케이블카, 산악열차 등 하드웨어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알프스를 공유하는 8개국이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해 1991년 맺은 알파인협약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리조트를 새로 짓는 식의 시설 위주 개발에서 지역사회의 참여와 문화를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시설보다 문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에선 한계에 부닥친 한 세기 전의 관광전략을 답습할 것인가.

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산악관광 활성화 대책을 통해 전국 산지의 70%를 산악관광진흥구역으로 지정해 골프장은 물론 위락·숙박·휴양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자에게 각종 혜택까지 주기로 했다. 사업지역 면적을 3만㎡ 이상으로 해 대기업에만 허용하겠음을 분명히 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이로써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중심으로 한 핵심구역 외곽지역인 완충구역을 비롯해 보전산지, 요존국유림, 산림보호구역 등이 모두 개발 대상이 됐다. 이들은 이제까지 공공재이자 미래세대에 물려줄 자연유산으로서 철저히 보호받던 지역이다. 백두대간 능선이나 국립공원, 유전자원보호구역 코앞에까지 골프장이나 리조트가 들어설 수 있게 된다. 국립공원 안에 들어서지 않게 돼 다행이라 할 것인가. 시민사회단체들이 ‘4대강의 아픔이 아직도 선명한데, 강으로 향했던 삽은 이제 산으로 향했다’고 개탄할 만하다. 다음달 열리는 국립공원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히 관심을 표시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한다면, 이를 신호탄으로 정부의 산악개발은 한반도의 중추를 흔들 것이다. 산의 신음 소리가 벌써 들리는 듯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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