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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엄마밥

등록 2015-07-20 18:24

저녁 식사를 같이 하다 옆에 앉은 선생님께 솔(soul)푸드가 무엇인지 여쭈었다. 선생님의 대답은 역시나 ‘엄마밥’이었다. 특히나 고사리나물이 생각난다 하셨다. 고사리에 얽힌 선생님의 추억담은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보다 더 맛있었다. 나도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셨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의식을 치르는 절차처럼 보였던 한과나 잔칫상 한가운데를 차지하던 도미찜처럼, 어린 내가 보기에도 격이 있었던 음식들. 배고프다 칭얼댈 때마다 뚝딱 만들어주셨던 칼국수나 도넛. 긴 여행을 하느라 바깥을 오래 떠돌다 돌아오면, 늘 엄마밥부터 먹어야 입맛이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칠십이 넘어가자 엄마는 음식맛을 조절하는 데에 자주 실패했다. 짜거나 매웠다. 밑반찬 속에서 흰 머리카락도 자주 발견됐다. 혀가 둔해지고 눈이 침침해진 탓이었다. 언제부턴가는 나물 같은 것을 무치거나 찌개를 끓이다 마지막 간을 보라며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한과도 사먹고 생선찜도 사먹고 칼국수와 도넛도 사먹었다. 한때의 그 맛을 그리워하며 맛집엘 찾아가지만, 대체로 성이 차질 않았다. 나에게 엄마밥은 이제 솔푸드가 아니다. 빛나던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가는 이의 늙음을 지켜보는 회한에 가까워져 있다. 오늘은 콩국물을 만들어 콩국수를 했다. 엄마라면 백태를 밤새 불려 콩을 삶고 갈아 콩국을 만들었겠지만, 나는 백종원 식 간단 레시피로 두부를 갈고 땅콩버터를 섞어 맛속임을 했을 뿐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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