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주장 없는 글쓰기

등록 2015-07-15 18:32

유년 시절엔 같은 동네 애들이 친구가 됐다. 십대 때에는 같은 걸 좋아하는 애들이 친구가 됐고, 이십대에는 같은 생각과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됐다. 그 후엔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게 됐다. 사람을 보면,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에 더 끌리게 됐다.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됐다. 손과 발을 움직여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삶 자체가 주장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의 주장을 듣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에 더 크게 설득되고 더 큰 경이감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도, 되도록 생각한 바와 주장하는 바를 글로 쓰지 않고, 다만 내가 직접 만났거나 직접 겪었던 일들만을 주장 없이 써보고 싶어졌다. 이 ‘볼록렌즈’라는 지면을 얻게 됐을 때에 내가 첫번째로 마음먹은 게 바로 주장 없는 글쓰기였다. 아무리 경계를 해도, 생각과 주장이 다음 문장에 저절로 이어질 때가 많다. 한 것과 발견한 것만 남기고 지운다고 지웠는데도 기어이 생각과 주장이 문장에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땀이 밴 양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편다. 뉴호라이즌스호가 56억7천만㎞를 9년6개월 동안 이동하여 명왕성에 접근했듯, 내가 마음먹은 이 밋밋한 글쓰기도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간 아주 먼 곳에 다가가 있으면 좋겠다.

김소연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나의 완벽한 상사 [세상읽기] 1.

나의 완벽한 상사 [세상읽기]

공교육에 부적합한 AI 교과서, 세금으로 무상보급 웬 말인가 [왜냐면] 2.

공교육에 부적합한 AI 교과서, 세금으로 무상보급 웬 말인가 [왜냐면]

최상목 ‘마은혁 임명’ 불복 땐 직무유기 [2월4일 뉴스뷰리핑] 3.

최상목 ‘마은혁 임명’ 불복 땐 직무유기 [2월4일 뉴스뷰리핑]

[사설] 이재용 항소심도 전부 무죄, 검찰 수사 실패 돌아봐야 4.

[사설] 이재용 항소심도 전부 무죄, 검찰 수사 실패 돌아봐야

나르시시스트 지도자 손절하기 [뉴스룸에서] 5.

나르시시스트 지도자 손절하기 [뉴스룸에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