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엔 같은 동네 애들이 친구가 됐다. 십대 때에는 같은 걸 좋아하는 애들이 친구가 됐고, 이십대에는 같은 생각과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과 친구가 됐다. 그 후엔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게 됐다. 사람을 보면,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에 더 끌리게 됐다. 자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됐다. 손과 발을 움직여 실천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세계를 보여줄 뿐이다. 삶 자체가 주장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의 주장을 듣고 있을 때보다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게 될 때에 더 크게 설득되고 더 큰 경이감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도, 되도록 생각한 바와 주장하는 바를 글로 쓰지 않고, 다만 내가 직접 만났거나 직접 겪었던 일들만을 주장 없이 써보고 싶어졌다. 이 ‘볼록렌즈’라는 지면을 얻게 됐을 때에 내가 첫번째로 마음먹은 게 바로 주장 없는 글쓰기였다. 아무리 경계를 해도, 생각과 주장이 다음 문장에 저절로 이어질 때가 많다. 한 것과 발견한 것만 남기고 지운다고 지웠는데도 기어이 생각과 주장이 문장에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땀이 밴 양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편다. 뉴호라이즌스호가 56억7천만㎞를 9년6개월 동안 이동하여 명왕성에 접근했듯, 내가 마음먹은 이 밋밋한 글쓰기도 차곡차곡 쌓여서 언젠간 아주 먼 곳에 다가가 있으면 좋겠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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