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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노조 홍보물을 받지 않을 권리’가 인권이라니…

등록 2015-07-14 18:27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 결혼 합헌 결정을 했을 때, 기자들이 그 소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전하기 위해 결정문을 손에 들고 달려나가던 동영상을 봤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기자들은 결정문을 손에 높이 치켜든 채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드디어 이런 역사적 판결이 나왔어!”라고 외치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노동문제 사건에 대해 그에 버금가는 역사적 판결이 나와 기자들이 그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다가 울컥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는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기 위한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에 해당하고 국내에 생산시설이 없다 해도 상표권을 유지하는 법인이 경영을 승계한 것으로 보아 해당 법인에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복직 의무와 해고 기간 9년 동안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소수 해직된 교사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해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4호 라목 조항에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은 과거 노동조합이 기업별 형태일 때 마련된 규정으로서 종속된 고용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등 초기업 단위 노동조합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전교조가 노조가 아니라는 근거로 해석될 수는 없고 교원노조법 제2조 역시 마찬가지 취지로 봐야 한다….”

우리나라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위와 같은 판결이나 결정이 내려지고 기자들이 그 내용을 손에 쥔 채 방송 중계진과 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전해주기 위해 내달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앞의 가상 판결들은 통설과 판례에 비추어 볼 때 무리한 법 해석이 결코 아니고 상당 부분 법원이 인정한 내용들이기도 하다.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법원의 판결은 풀뿌리 활동을 하는 단위 노동조합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노동운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사회 이익에 부합하는 정당한 일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판결 내용이 보도되면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사업장에서는 회사 쪽의 탄압이 더욱 힘을 얻게 되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

중소 규모 병원 노동자들이 1년6개월을 준비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동네 작은 의원에서 시작해 혼신의 힘을 다해 키운 중소 규모 병원의 경우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병원 소유자들이 많다. 온갖 노조 탄압 행위가 속출하고 그 과정에 ‘컨설팅’이라는 명분으로 개입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자들도 있다. 평소 ‘자리 욕심’이 있던 직원들은 경영진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노동조합 탄압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조차 느끼지 못한다.

노동조합이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했더니 직원들 중에는 “노조 홍보물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서명을 받으면서 그걸 ‘인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노조 홍보물을 계속 돌리면 인권 침해로 문제 삼겠다”고까지 했다. 그 사람들은 “불순하고 과격한 민주노총 소속 노조가 설립돼 병원 이미지가 나빠지고 경영에 저해 요소가 되고 있으니 선량한 직원들은 어떻게든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졌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병원 지시 없이 스스로 한 일”이라고 자랑스레 말할 리가 없다.

수백명 노동자들을 몇 년 동안이나 길거리에 나앉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기업의 정리해고 결정을 정당하다고 판단하는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자신들의 행동 역시 정당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법조인의 삶을 선택한 한 젊은이가 씁쓸한 표정으로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법원이 노동문제에 대해 상식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어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성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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