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양성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국가의 백년대계에 속한다. “시험에서 양성으로”의 구호 아래 로스쿨 체제로 전환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예정된 사법시험의 폐지가 다가오면서 요즘 사시 존치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와 자존심, 심지어 지역상권까지 가세하다 보니 논의가 혼탁해진 면이 없지 않다. 단기적 이해관계나 자극성 구호를 걷어내고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할 일이다.
사시존치론은 로스쿨의 폐단을 부각시키면서 이를 사시의 필요성으로 연결시킨다. 사시존치론의 첫 근거는 “개천에서 용”의 논리다. 한때 사시를 과거급제처럼 여겨 불우한 여건을 이겨내고 수석합격한 소감이 지면을 장식했다. 그러나 사시가 등용문이나 출셋길이라는 사고 자체가 철 지난 관념이다. 오늘날은 “용”이 아닌 “시민 속의 전문가”를 기본모델로 할 시대다.
“개천-용”의 사고가 비판받자 사시가 “경제적 약자를 위한 희망의 사다리”라는 구호가 나왔다. 그러나 수만명 응시자들 중 겨우 3%의 합격자를 내는데, 그 3% 안에 경제약자들이 포함된다는 제도적 보장은 없다. 합격생의 면면을 보니 경제약자도 없지 않더라는 정도다. 최근에 올수록 그러한 경제약자의 비율도 급감하고 있다. “희망의 사다리”라고 포장하지만, “3%에게만” 희망이고, 약자를 위한 “사다리”는 없다.
그런 추세를 염려하여 로스쿨을 설계할 때 “신체적·경제적 취약계층” 중에서 특별전형할 것을 로스쿨 인가의 조건으로 했다. 로스쿨 체제에서는 매년 7% 내외의 취약계층의 입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경제취약층에겐 전액 장학금이 제공된다. “사시는 합격 가능성이 불확실하고 수험 기간 동안 경제지원이 없는 반면, 로스쿨에는 장학금 혜택이 있고 3년간 노력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기에 법조인의 꿈을 갖게 되었다”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사법연수원을 다니면 비용도 안 들고 월급까지 받으니 사시-연수원 체제는 “돈스쿨”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연간 500억~900억원에 달하는 연수원 운영비를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생긴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로스쿨에서는 학교의 장학금 확충 노력 덕분에 전체 학생의 40% 가까이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닌다. 정부는 법정화된 재정지원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
로스쿨에 대한 또 다른 비난 가운데 “현대판 음서제”라는 게 있다. 유력자의 자제들이 입학 및 취업에서 특혜를 누린다는 의혹이다. 그러나 입학 단계에서 무슨 특혜로 수사·처벌받은 예가 없다. 판검사 등 공직자의 임용에서 누구의 특혜가 틈입할 정도로 허술할 리가 없다. 로펌 등 사적 영역에서 어떻게 선발하는가는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사적 영역에 음서제적 요소가 있다면 그건 사시 출신이든 로스쿨 출신이든 가리지 않고 작동할 것인바, 유독 로스쿨과 음서제를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취업경쟁에서 공정성 확보는 전사회적 과제이기도 하다. 특혜 시빗거리가 없는지를 감시·비판하는 것은 법조사회는 물론 언론과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것이다.
현재 로스쿨 체제는 여러 의미있는 비판들에 대해 제도 개선으로 응답할 것이 쌓여 있다. 그러나 로스쿨의 문제가 사시 존치를 통해 해소되는 게 아니다.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의 출신 대학 및 전공 영역은 사시 시대보다 훨씬 다변화되었고, 취약층의 진입을 보장하고 있다. 굳이 내세우지 않을 뿐이지 중위층 이하, 서민층 학생들이 로스쿨에 충분히 진학하고 있다. 로스쿨 변호사들이 나오면서 공익 분야의 진출도 활발해졌다. 변호사는 시민의 이웃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다. 물론 이런 추세는 가속화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대한변협과 지방변협, 특히 서울변협의 활동이 눈부시다. 전관예우의 관행에 쐐기를 박고, 법조비리 척결에 앞장서고, 법률서비스를 저변화하는 노력은 상찬받을 일이다. 다만 로스쿨 체제에 대해서 부정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변협의 체통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로스쿨과 변협은 적대자가 아니라, 좋은 법조인 양성을 위한 동반자적 관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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