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이란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합니다. 메르스가 더욱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도 과학자들은 메르스 바이러스가 자연의 어디에 숨어 있는지, 어떻게 전파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마지막 감염 고리를 끊을 때까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6월18일 마거릿 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기자회견)
2012년 처음 보고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인 메르스 바이러스(MERS-CoV)는 현대 의학과 과학의 수준에서도 아직 낯선 위협이다. 그렇게 낯설기에 불안과 경계는 높고, 그래서 지금까지는 주로 중동에서 발병한 메르스가 먼 나라 한국에서 별안간 확산한 사태는 세계보건기구를 긴장시킬 정도로 “새로운 전개”였다. 한국-세계보건기구 합동평가단의 조사가 시작됐고 세계보건기구에선 긴급위원회가 열렸다. 다행히 한국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이전의 발병 패턴에서 벗어나는 변이는 아니라는 잠정결론이 나왔으며, ‘다른 나라들의 공중보건에 위험을 주거나 국제적 공동대응이 필요한’ 국제비상사태(PHEIC)의 요건엔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세계보건기구는 왜 이토록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을까? 관련 자료를 찾다 보니, ‘국제보건규칙’(IHR)이라는 국제협약에서 보면 한국 메르스 사태는 세계보건기구와 190여 협약국들에 긴밀히 연결된 국제 관심사임을 알 수 있다. 국제보건규칙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2002년과 이듬해에 사스 바이러스가 29개국에 퍼져 감염 8000여명, 사망 755명의 피해를 남긴 이후에, 세계가 공중보건에 대한 공동대응을 강화해 2005년 개정 규칙을 만들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국제보건규칙 2005’ 체제에 살고 있다.
정부의 세계법제정보센터 누리집에도 실려 있는 이 규칙은 한 나라의 공중보건 위험이 세계의 위험이 되는 ‘위험의 세계화’ 시대에 대응해, 한 나라에 비상한 상황이 생기면 이를 국제기구에 상세히 통보할 의무를 강화하고 평시 예방·감시 체제를 갖추도록 요구하며 심각한 상황에선 비상사태를 선언해 국제공조에 나설 수 있게 했다.
이런 국제협약의 시선으로 보면, 사태 초기에 한국 당국이 고수한 관련 병원 비공개 원칙은 무모한 것이었으며 공중보건의 프로답지 않은 것이었다. 감염 경로 추적·차단과 더불어 투명한 정보공개는 보이지 않는 기생 병원체의 확산에 맞서는 인간사회의 유력한 수단인데도 비공개를 내세운 것은 국제보건규칙과도 거리가 먼 큰 실책이었음이 자명해진다.
게다가 다중 정보를 공유하고 사회적 위험을 다스리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서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하는 논의들이 이어지는 요즘에, 질병관리본부는 오히려 트위터를 한때 닫아버렸으니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방역 주체로 비쳤을까? 부끄러운 일이다.(트위터는 5일 재개됐다.) 국제보건규칙 시행 문건은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투명한 정보공유, 나은 의사결정, 적절한 개입에 도움을 준다”고 강조하며, 국제보건규칙 책임자는 “오늘날 정보화 시대에 어떤 문제를 오래 무시하거나 숨기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정보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메르스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행사 축사에서 인용 형식을 빌려 “초기에는 운이 좋지 않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역학조사가 이루어졌고…”라고 말했다. 정보 비공개 실책에 대한 지적은 생략되고, 혹시라도 메르스 사태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인식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들었다. 투명한 정보공개는 시민의 ‘알 권리’ 이전에 정부가 해야 할 ‘알릴 의무’이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