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꼽으라면 아마도 외세의 침공으로부터(보수정권이 좋아하는 표현을 빌리자면, 북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공을 당한다면 그때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고 계실까? 며칠 만에 국민 앞에 나타나실까? 과연 박 대통령은 우리의 영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낼 능력이 있기는 한 건가? 그럴 의사나 의지는 있는 건가? 국가 위난 시에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대통령이기는 한 건가? 전쟁이 아니라 원전사고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확인했다.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사전에 못 막았더라도 초기에 적극적이고 기민하게 대응하기만 했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막지 못했더라도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던 일을 국가적 참사로 키운 박근혜 정부의 ‘재난 창조능력’을 보면서 국민들은 다음번에 닥칠지도 모르는 국가적 위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화급한 세월호 침몰 상황에서 대통령은 7시간이나 ‘잠적’하였고, 잠적 뒤 처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하는 생뚱맞은 말이었다. 300여명의 고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다 지난 다음이었다. 대책은커녕 상황 파악도 못하고 계셨다.
백신 없고, 치료제 없고, 치사율 높은 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발견되고 열흘이 훨씬 지나도록 대통령은 ‘자율 자가격리’ 상태였고, 그동안 메르스 사태는 컨트롤타워를 잃고 방역의 통제망을 벗어나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한참이 지나 나타난 대통령은 이번에도 현황 파악조차 못하고 계셨고, 하신 말씀이란 게 “알아보고 파악하고 논의하고 돌아보고…” “조기에” “철저하게” 종식시키겠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이미 메르스가 전국으로 다 퍼져 국가적 재난 사태로 커진 다음이었다. 대통령의 마음을 빼앗아 갈 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은 열심히 ‘정치’를 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대통령은 메르스 종식보다 대통령 보여주기와 정치에 더 관심이 많으셨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관료들이 재난 대처보다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더 열을 올린 것도 세월호 때와 같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역사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고 했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씀을 하신 바로 그 박 대통령이 바로 1년 전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무고한 국민들이 메르스라는 보복을 대신 받았다. 불쌍한 국민들이 다음번에는 박 대통령 때문에 무슨 보복을 받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 땅에 전쟁이 난다면 현대전의 특성상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은 즉각적으로, 아주 길게 잡아야 서너시간 이내에 우리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기민하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때는 과연 며칠 동안이나 사라지실까? 하루? 열흘? 한달? 이번에도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할까?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나 할까? 박 대통령과 그 휘하의 장관·관료들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 보인 행태를 보면 암담하기만 하다. 우리 박 대통령께서는 전쟁이 나고 한참 뒤 아마도 대한민국의 영토가 침략세력에게 함락되고 무수한 국민들이 목숨을 잃은 다음 어디 먼 안전한 곳에서 나타나셔서 “전선에서 적군을 조기에 확실하게 퇴치해야 한다”고 황당한 군사평론이나 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때는 ‘교통사고’의 책임을 물을 유병언도 없고, ‘중동독감’을 차단 못했다고 대통령께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할 삼성서울병원장도 없다.
연이은 방산비리로 구멍 난 국방. 국가의 통제력 상실. 국가안보를 가장 중시한다고? 보수정권의 ‘안보 무능’ 민낯을 본 국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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