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칼럼]
승자가 되려면 뻔뻔하고 음흉해야한다는 중국의 ‘후흑학’
숱한 의혹 깔아뭉갠 황교안 총리후보는 ‘후흑의 경지’올라
승자가 되려면 뻔뻔하고 음흉해야한다는 중국의 ‘후흑학’
숱한 의혹 깔아뭉갠 황교안 총리후보는 ‘후흑의 경지’올라
무능이란 말은 이제 박근혜 대통령한테 따라붙는 꼬리표가 돼 버렸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얼마나 무능한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그는 국가 위기 국면에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이고,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우왕좌왕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과 국가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보다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더 걱정된다. 박 대통령의 무능이야 이미 정평이 났으니 국민들은 그에 맞춰 살아가는 방안을 찾을 수라도 있다. 무능은 또 아무 일도 안 하는 무위로도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로 인한 국가적 혼란으로 국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보기는 하겠지만.
황 총리 후보자는 다르다. 그는 결코 무능하지 않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더욱 아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에서 보듯 정한 목표는 끝까지 이뤄낸다. 해명되지 않은 숱한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총리 인준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는가.
그가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는 태도와 청문회에서 한 발언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후흑’이었다. 후흑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한 말로, 얼굴이 두껍고(뻔뻔하고) 마음이 검다(음흉하다)는 뜻이다. 청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것을 걱정했던 중국인 이종오가 주창한 <후흑학>에서 나온 말이다. 이종오는 중국 고대역사를 두루 살핀 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후흑해야(뻔뻔하고 음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황 총리 후보자는 이종오의 후흑학에 충실했다. 기존에 낙마했던 여느 후보와는 사뭇 달랐다. 언론이 숱한 의혹을 제기해도 “청문회에서 밝히겠다”며 언론 보도를 철저히 깔아뭉갰다.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재깍재깍 해명에 나서 ‘자판기’라는 별칭을 얻었던 이완구 총리와는 딴판이었다. 황 후보자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니 언론도 더 이상 의혹을 이어가지 못했다. 과거 중도하차했던 총리 후보자들의 경험에서 배운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1~2년 배운 실력이 아니었다.
황 후보자는 또 자신한테 불리한 자료는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야당 청문위원들이 아무리 다그쳐도 개인 비밀 보호 등을 이유로 이를 묵살했다. 야당으로선 자료가 없으니 검증을 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3일간의 청문회는 허망하게 지나갔다.
야당은 자료제출 거부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마저도 관철하지 못했다. 칼자루를 쥔 황 후보자는 사과가 아니라 ‘포괄적 유감 표명’을 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것도 총리 임명이 된 뒤에 말이다. 숱한 비리 의혹이 제기돼 야당으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은 황 후보자가 거꾸로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격이 됐으니 대단한 반전 아닌가. 후흑의 상당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이루기 힘든 ‘승리’다.
황 후보자의 이런 성향은 하루이틀 된 게 아닌 것 같다. 그는 법무부 장관이던 2013년 6월 국정원 대선 개입 특별수사팀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하자 이를 거부한 적이 있다. 그 이유로 내세운 게 ‘법률가의 양심’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상대방이 양심을 걸고 말한다고 할 때는 대체로 진심이라 믿어준다. 황 후보자는 일반인들의 이런 상식을 최대한 이용하려 했으리라.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양심도 시장에서 개돼지 거래하듯이 팔아치울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 후흑학이다. 그의 반민주적인 정치적 성향이나 해명되지 않은 병역·탈세 등 각종 의혹만으로도 총리로서는 부적격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의 이러한 후흑 처세술이다.
이종오는 청나라 말에 밀려오는 외세를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후흑을 주창했다. 단순히 승자가 되기 위한 후흑학을 말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구국’이라는 후흑의 본질은 내팽개친 채, 뻔뻔함과 음흉함이란 처세술만 받아들이면 구국은커녕 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게 된다. 황 후보자가 그처럼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인물이 아닌지 걱정된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무능보다 황 후보자의 후흑이 더 무섭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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