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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메르스에 들켜버린 한국의 ‘차별 전염병’

등록 2015-06-16 18:49수정 2015-06-19 08:59

[하종강 칼럼]
메르스 앓고도 쉬쉬하며 일한
비정규직의 절박한 심정을 아는가
생명보다 돈을 앞세우는 행태는
메르스만큼 위험한 사회 전염병
병원에 일주일가량 입원한 적이 있다. 연세가 지긋한 청소 노동자가 대걸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 분주한 청소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간병인과 낮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가 침대에 누워 있는 내 귀에도 들렸다. 사뭇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방을 깨끗이 치웠다고 과장님이 식권 한 장을 주더라고… 병원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타 먹고 있는데 영양사가 오더니 ‘누가 여기서 밥 먹으라고 그랬냐?’고 묻는 거야. ‘우리가 이 병원하고 계약할 때 당신 같은 용역회사 직원은 식수인원에 포함이 안 돼 있었다’면서…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더라고… 그래서 ‘나도 식권 냈습니다. 식권통에 보면 물에 젖은 식권이 한 장 있을 텐데 그게 바로 내가 낸 식권이오’라고 답했는데도 계속 지켜 서 있는 거야. 밥 먹다 목이 메서 그냥 나와 버렸어.”

요즘 병원 구내식당들은 병원이 직접 운영하지 않고 대부분 외주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해 위탁 운영한다. 위탁받은 대기업이 중소 규모 업체에 재도급을 주는 경우도 있다. 식당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저하되고 식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외주업체와 계약을 체결할 때 병원 직원들만 식수인원에 포함시켰을 뿐 파견 나온 용역 노동자들은 아예 고려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른바 ‘간접 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서조차 사각지대에 내몰렸다. 밥 먹는 권리조차 차별을 받았으니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속에서는 오죽했을까?

알려진 것처럼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 이송 요원으로 일하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8일 동안이나 신고하지 않은 채 계속 일하면서 환자 164명, 직원 52명과 접촉했다. 병원 관계자는 “협력업체 직원이라 근무를 못하면 월급이 줄어들 걸 우려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메르스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응급실을 드나들었지만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는 병원의 관리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었던 것이다.

부산에서 두번째로 감염된 환자 역시 대전의 병원에서 환자와 함께 있다가 감염됐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와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컴퓨터업체 외주 직원으로 2주 동안이나 파견근무를 했지만 관리망에서 빠진 것이다. 이 환자는 미열과 설사 증상이 나타나자 병원과 약국 등을 오가며 742명과 접촉했다.

병원들이 청소·경비와 식당 업무는 물론 환자 이송과 간호조무 업무까지 무분별하게 외주 위탁 방식을 늘려갈 때 병원 노동자들은 일찍이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사업을 다른 사기업과 똑같이 최소한의 인원만 고용해 최대의 노동을 시킴으로써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는 경영 방식이 언젠가는 불러올 비극이었다. 노동비용을 절약하는 만큼 다른 누군가가 손해를 감수했다. 비정규직이 당하는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전염병만큼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에 대한 경고가 병원노동조합의 대표적 표어인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표현이다.

병원 정규직 노동자들도 어려운 상황이다. 외국 영화를 보면 병원이 나오는 장면에서 으레 나이 지긋한 간호사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연세가 많은 간호사들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업무량이 많고 노동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한국 병원의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미국보다 3배나 많다는 조사 보고도 있고, 최근 독일을 다녀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독일 병원은 우리보다 두 배의 인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병원노동조합이 현재 간호사 1인당 9명인 환자 수를 4명으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앞서 얘기한 병원에는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었다. 노조 위원장은 얘기를 듣더니 “이 사람들이 약속을 또 안 지키네”라고 분개하며 식당으로 달려가 담당 계장과 영양사에게 언성을 높이며 입씨름을 벌이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여전히 노동조합이 희망이다. 돈보다 생명을!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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