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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홍섭의 물바람 숲] ‘메르스’는 이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등록 2015-06-10 18:47수정 2015-06-11 15:14

메르스 바이러스를 낙타한테 옮긴 것은 박쥐였다
숲 파괴로 ‘큰박쥐’들 농장 이동해 돼지·사람 감염
인간이 부른 환경변화가 인수공통전염병 확산 부채질
최근 인수공통전염병의 매개체로 박쥐가 주목받고 있다. 니파 바이러스를 돼지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큰박쥐. 사진=Andrew Merc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인수공통전염병의 매개체로 박쥐가 주목받고 있다. 니파 바이러스를 돼지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진 큰박쥐. 사진=Andrew Mercer, 위키미디어 코먼스
“관계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 맹성을 촉구한다.”

1958년 9월6일치 <동아일보>는 일본뇌염 환자가 4000명을 돌파하고 사망자가 1000명을 넘었는데 9월이 되어서도 뇌염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무능을 지탄하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그해 여름 해방 이후 최악의 뇌염으로 6000명 이상이 감염돼 17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0년대부터 집중적인 방역활동과 백신 접종, 전문화한 양돈으로 돼지와 사람의 격리 등을 통해 뇌염 환자는 극적으로 줄어, 1970년대에는 환자가 86명에 그친다. 현재는 매년 2~3명 수준이다. 한국, 일본, 대만이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쳐 뇌염을 퇴치했다.

아시아 개도국은 그 반대 경로를 밟고 있다. 베트남, 타이, 네팔, 스리랑카, 인도에서 일본뇌염이 기승을 부려 세계보건기구(WHO)는 해마다 아시아에서 5만명이 감염돼 1만500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한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관개 논농사와 양돈이 늘었기 때문이다. 논에 늘 물이 차자 모기가 늘었고 흡혈 대상인 새와 돼지가 늘었다. 숲의 서식지를 잃어 농가로 몰려든 박쥐도 뇌염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일본뇌염이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모두 인수공통전염병이다. 가축이나 야생동물의 질병이면서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 전염병이란 뜻이다. 동남아 뇌염에서 보듯이 인간이 부른 환경변화가 인수공통전염병의 확산을 부채질하고 있다.

인수공통전염병의 매개체 구실을 하는 동물 가운데 최근 박쥐가 관심거리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전파한 숙주가 낙타로 알려져 있지만, 애초 바이러스를 낙타한테 옮긴 것은 박쥐였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도 사향고양이를 숙주로 간주해 대규모 도살을 했지만 나중에 바이러스를 보유해 전파한 것은 박쥐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최근 출현한 세계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인 에볼라, 마르부르크, 헤니파, 유사광견병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보유 동물에는 모두 박쥐가 포함돼 있다. 전세계 200종 이상의 박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등 15개 과 이상의 인수공통전염병 바이러스가 확인됐다.

흥미롭게도 박쥐는 이런 치명적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박쥐는 다른 어떤 포유동물도 하지 못한,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방법을 진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대사율이 높아 손상된 유전자를 잘 수리하는 박쥐의 면역체계에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메르스 등 치료약이 없는 신종 감염병의 해결책을 박쥐로부터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숲을 없애고 농장을 늘리는 과정에서 박쥐와 만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1999년 발생해 100명의 사망자를 내고 100만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해 양돈산업을 괴멸시켰던 니파바이러스 사태가 그런 예다. 과일을 주식으로 하는 큰박쥐들이 화재와 숲 파괴로 먹이가 부족해지자 대규모 양돈농장 주변에 심은 과일나무로 몰렸다. 큰박쥐의 침과 배설물에 오염된 과일을 먹고 돼지가 감염됐고, 밀집 사육과 장거리 수송 과정에서 광범한 돼지농가와 농민에게 퍼졌다. 환경 변화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신종 감염병에 노출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바이러스는 방글라데시, 인도 등에서 해마다 출몰해 사람 대 사람 감염도 이뤄지고 있다.

인류가 1만년 전 수렵채취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숙명처럼 동물 기원의 전염병을 앓게 됐다. 지난 세기에 항생제와 백신, 위생과 영양 향상으로 겨우 맞추었던 균형은 금세기 들어 급속히 병원체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인류에 의한 전례 없는 규모의 생태적, 사회적 변화가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집약농업, 산림벌채, 기후변화, 생태계 교란 등 환경 변화와 여행과 무역의 증가가 그 원인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결국, 이번에 메르스를 잡는다 해도 제2, 제3의 메르스가 닥칠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한다. 보건 당국의 정책부터 병원을 찾는 시민 개개인의 행동까지 이런 재앙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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