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이 5월 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갔다. 기관지염이 심해서였는데, 그 병원실에서 메르스 환자가 나왔다는 소문이 뒤늦게 들렸다. 정부는 문제 병원의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고 언제 그 환자가 내원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 애썼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고 돌아 확진 환자의 근처 학교가 문을 닫고, 그 소식을 접한 인근 학교들이 동요했다. 학교, 학원, 극장, 백화점, 예식장 모든 공공장소가 스산하다.
뭔가 모를 불안은 정보의 불확실성에서 출발한다. 메르스 환자의 감염 경로나 확산 경위는 정부가 정밀추적하고 제대로 관리해야 할 긴급사안이다. 그런데 정부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무슨 연유인지 병원과 환자의 거처를 비공개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무슨 영향력이 큰 병원이 관여되어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퍼졌고, 어느 병원이라고 특정하지 않았기에 훨씬 많은 병원들이 악소문에 시달렸다. 공식적 정보가 나오지 않으니 다른 방법으로도 정보를 획득하려고 난리였다. 세월호의 교훈을 터득한 시민들인지라, 정부 발표만 믿고 가만있을 순 없다는 것이었다. 유통된 정보들에는 추측과 사실이 뒤섞여 있지만, 불확실한 정보라도 취합하면 뭔가 그림이 그려진다. 건강과 생명의 문제인지라 정보에 대한 민감성은 아주 커졌고, 그런 상황이니 불확실한 정보라도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정부는 이를 괴담이나 유언비어로 치부하고, 경찰 단속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메르스 확산의 방지를 위해서는 느리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 괴담 단속의 속도만은 참 빨랐다. 마치 괴담이 메르스의 원인이나 되는 양 말이다.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서울시와 성남시는 메르스가 유포된 병원과 환자의 접촉 범위를 정면으로 공개하고, 자가격리를 포함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를 통해 비로소 시민들은 문제의 범위를 인지하게 되었고, 맞춤형 대책을 알게 되었다. 내 가까운 지인도 안심했다. 삼성병원에 갔던 것은 문제의 환자가 입원하기 하루 전이었던 것이다.
사리가 그러하건만, 지자체장들의 정보공개 조치에 대해 중앙정부는 대번에 정치적 공격에 돌입했다. 질병에 대한 대처에서는 그토록 무능한 정부가 야당 시장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는 엘티이(LTE)급 속도로 대응했다. 박원순은 메르스와 싸우는데, 박근혜는 박원순과 싸운다는 말까지 나돌 지경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에 대한 현 정부의 무능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일처리 하는 모양새를 보면 세월호의 그것과 어쩜 그리 닮았는지도 놀랍다. 초동대응은 지지부진하고, 실질적 대응 조치엔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 괴담 단속엔 열을 올리고, 야권의 대응에 대하여 꼬투리 잡아 정쟁화시키는 데는 9단급이다. 세월호 때는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실종이더니, 메르스 때는 강 건너 불구경식 논평만 내다가, 서울시장의 총체적 대처에 등 떠밀려서인지 대책본부로 가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정보공개에 이르기까지 18일이나 걸렸는데, 그 발표에도 병원 이름과 소재지가 엉터리로 나와 오류 정정에 바쁘다. 그러면서도 국론분열은 안 된다는 둥 고장난 레코드판을 틀고 있다. 하도 미덥지 못한 정부이니, 국민들이 각자도생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괴담, 유언비어를 통제하면 질병이 사라지는가. 정보를 당국 입맛대로 조절, 통제할 수 있다는 사고 자체가 독재적이고 후진적이다. 정확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여 정보 부족에서 비롯된 억측을 잠재우고, 효율적 대처를 철저히 해가는 속에 정부의 신뢰가 축적된다. 괴담과 싸우는 데나 열중하고, 지자체장의 대책 수립을 정쟁화하는 그런 정치꼼수밖에 없는 정치집단한테 신뢰를 주려야 줄 수가 없다. 이런 정부를 그저 “가만히 따르자”고 맹종하는 백성들은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건강도 제대로 지켜낼 수 없는 법이다. 괴담이 나온다면 괴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무능과 불신이야말로 괴담의 발원지이자 배양기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