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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북핵은 미국의 꽃놀이패인가

등록 2015-05-27 19:04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는 미 태평양사령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사령부 작전국장을 맡고 있는 몽고메리 해군 소장은 “6개월마다 상황 변화를 분석해 작전설계를 바꾸고 있는데, 북한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은 한 가지 요인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의외였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에스엘비엠 시험 발사로 난리가 났는데, 정작 북한이 겨냥하고 있다는 미국은 오히려 차분했다.

지난주 하와이 미 태평양사령부의 고위 장성들과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제일 먼저 든 궁금증은 그들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였다.

한마디로 그들한테 북핵은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태평양사령부의 주 관심사는 군사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중국을 어떻게 견제하느냐였다. 그것이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영향 때문일 수 있고, 실제로 군사적으로 북핵의 능력을 별로 높게 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 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만을 외치고 있을 뿐 비핵화를 관철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처들은 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 능력을 점점 강화하는 걸 눈뜨고 지켜봐왔다. 사실상 방치한 것이다. 그 속셈은 무엇일까.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잠재적인 위협으로 남겨두면서 이를 군사·외교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일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

미국이 이처럼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면 이는 북한 핵무기의 공격 능력이 아직은 자신들의 통제 범위에 들어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버지니아급 최신예 핵잠수함인 미시시피호(7800t급)를 기자들에게 샅샅이 공개한 해군 관계자는 이런 핵잠 2척이면 북한 잠수함은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시시피호는 24기의 어뢰와 12기의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장치를 장착하고 있다.

또 하나는 북한이 미국을 핵무기로 공격하겠다고 아무리 위협해도 실제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칼 바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 프로그램 책임자는 북한이 핵을 발사하는 것은 곧 북한의 종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동서문화센터 데니 로이 교수도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는 것은 어떤 시나리오라도 북한 체제가 자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북핵이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그사이 북한의 핵개발 능력은 점차 강화되면서 북핵의 위협 수준만 높아지는 상황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계속 부각시키면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첨단 무기체계를 더욱 강화하도록 남한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최근 방한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공론화한 것도 이런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남한도 점점 강화되는 북한의 핵위협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북핵이 실제 사용될 가능성이 작다고 하더라도 핵을 머리 위에 두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 빌미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더 고도화된 무기를 도입하고 무기체계를 첨단화해나갈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길에 들어서 있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핵 능력을 진짜 위협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핵무기 능력을 키워 가려 할 것이다. 자신들의 생존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는 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결코 중단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결국 현재 북핵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남과 북에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은 핵개발에 계속해서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야 하고, 남한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끝 모를 첨단무기 경쟁 속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미국은 어떤가. 북핵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남한에 최첨단 무기를 팔 수 있는 시간을 벌고, 안전 보장을 대가로 중국을 견제할 동맹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꽃놀이패 아닌가. 북핵이 미국한테는 ‘축복’일 수 있다는 이 역설을 언제까지 손 놓고 지켜봐야 할까.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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