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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더 멀리’

등록 2015-05-25 18:53


제주시 칠성통에 작은 서점이 새로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좁고 한적한 골목의 끝자락에 깔끔한 마침표처럼 단정하게 자리한 서점을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독립출판물을 고루 선별해놓은 아주 작은 공간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책표지를 보이며 진열돼 있다. 작은 책방만의 매력이다. 더 많은 책을 보유하려고 책등만 보이며 빼곡하게 진열하는 여느 서점들과 가장 다른 점이다. 종수가 아주 적지만, 서점 주인의 안목으로 선별한 것들이다. 반듯하게 정면을 드러내며 기대거나 누워 있는 책들은, 선택받은 사물만의 특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 권을 집어들고 계산대 앞에 선다. 책 제목은 <더 멀리>다. 시인들 몇몇이 의기투합해서 창간한 문예지다. 서점 이름이 찍힌 봉투에 담아 흔들흔들 손에 들고 골목을 걷다가, 인증샷을 찍어 <더 멀리>를 만든 시인 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더 멀리>를 가장 멀리서 샀네, 하는 답문자를 받고 씨익 웃다가 문득 헤아려진다. 이들이 만든 잡지의 이름이 왜 <더 멀리>인지를. 왜 시인은 더 먼 곳으로 가려 할까를 헤아리다 고쳐 생각한다. 더 먼 곳으로 가려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고 말이다. 이따금 시인이 되는 자격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 난처했는데, 한동안은 이렇게 대답을 해보아야겠다. “더 멀리 가려 한다면 시인의 자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원에 앉아, 만듦새가 정갈하지만 완벽해 보이지는 않아 더 마음에 드는 책표지를 천천히 쓰다듬어 본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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