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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홍섭의 물바람 숲] ‘검은 황금’을 땅속에 묻어둘 수 있을까

등록 2015-05-20 18:36

앨런 러스브리저는 194년 역사의 영국 권위지 <가디언>에서 20년째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올여름 퇴임을 앞두고 후회할 일이 없나 돌아봤다. 영국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국 국가안보국 사찰기록을 폭로하는 등 이 신문은 요즘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3월부터 기후위기에 관한 대대적인 보도와 기획을 시작했다. ‘땅속에 놔두자!’ 캠페인은 그 하나다. 온실가스 방출로 이어지는 석탄,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를 생산하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를 이끌자는 것이다.

올해는 기후변화와 관련해 역사적인 해가 될 것이다. 12월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20년 이후 세계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체제가 출범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차지하지만, 여태껏 감축 의무를 지지 않던 미국과 중국이 전향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큰 동력이다.

무엇보다 가차없이 진행되는 기후변화에 더는 눈감기가 힘들어졌다. 올 3월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관측 사상 처음으로 400ppm(ppm은 100만분의 1을 나타냄)을 돌파했다(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산업화 이전보다 120ppm 높은 수치이다. 최근 미국 프린스턴대 존 히긴스 등 연구자들이 남극에서 눈과 함께 얼음 속에 갇힌 ‘공기 타임캡슐’을 분석해 보니 지난 100만년 동안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후 재앙은 무엇이 원인이고 언제 발생할 것이며 어떻게 해결할지까지 훤히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가 겪은 어떤 재앙과도 다르다. 대기 속에서 열을 붙잡는 온난화 주범 이산화탄소가 수백년 동안 머물기 때문이다. 유엔이 세계 과학자들의 중지를 모아 내린 결론은 단순 명쾌하다. 지구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려면 대기 속 이산화탄소의 양을 3000기가톤(1기가톤은 10억톤) 이하로 묶어야 하는데, 이제까지 배출한 양이 이미 2000기가톤이니 나머지 용량 1000기가톤을 세계가 공평하게 나눠서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지금처럼 배출하면 남은 용량은 25년이면 소진된다. 게다가 현재까지 확인된 화석연료 부존량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따져 인류에게 남은 용량의 3배나 된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당장 대대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는 한편 땅속에 묻힌 화석연료의 상당 부분을 그대로 묻어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올 1월 <네이처>에 실린 논문을 보면, 이제까지 확인된 석유 부존량의 3분의 1, 천연가스의 2분의 1, 석탄의 80%를 채굴하지 않고, 당연히 새로운 탐사도 중단해야 2도 상승으로 억제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막강한 로비력을 지닌 에너지 거대기업들이 기껏 발견한 ‘검은 황금’을 쉽사리 포기할까. 2012년 화석에너지 기업 투자철회 운동이 시작됐을 때 산업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WCC) 등 종교계와 대학, 자선재단을 중심으로 확산돼 180개 기관이 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철회를 약속하기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 철회 액수는 전체 화석에너지 산업 규모의 5%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담배, 남아공의 인종차별처럼 정치적 낙인이 찍힌 화석에너지 기업이 여론 악화와 정책 변화를 통해 주가가 하락하고 미래가치가 떨어지는 사태가 닥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도 “많은 화석연료 자원이 기후변화 대책에 따라 가치를 잃을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적인 흐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국내에서는 석탄과 원자력에 기대어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값싼 전기의 안정적 공급에 치중하고 있고, 국외에선 개도국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앞장서 해외 석탄 보조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가장 많다. 정부가 다음달까지 수립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화석연료 사랑’과 전력수요 과다 예측에서 얼마나 벗어날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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