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장점은 무엇보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태호의 <미생>만큼 직장인들의 애환을 널리 공감하게 만든 작품은 일찍이 없었다. 최규석의 <송곳> 역시 직장인들의 긴장관계를 ‘노동운동’의 관점으로까지 확장시키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요즘은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 <송곳>을 보는 것이 더 많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이 좋은 만화를 ‘초·중딩’들이 많이 보지 않으니 많이 봐 달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한번은 강의 도중 휴식 시간에 한 여학생이 내게 오더니 말했다. “이런 말씀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요, 저 중학생이지만 그 만화 보거든요. 그러니까 함부로 일반화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미안합니다”라고 공손하게 사과했다.
<아톰>으로 유명한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가 어린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만화를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들켰지만 오히려 “훌륭한 만화가가 될 수 있겠구나” 칭찬을 듣고 수업시간에 만화 그리는 것을 허락받았다는 일화가 있다. 교육문제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만일 그 선생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톰>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만화영화 <아톰> 예고편을 함께 보기도 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학생이 내게 오더니 말했다. “이런 말씀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요, 아톰이 원자력을 에너지로 쓰는 로봇이거든요. 작은 원자력 건전지를 넣기만 하면 무한한 힘이 솟아 나와서 자칫 원자력을 이상적 에너지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내용이 있어서요, 그런 건 좀 짚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미처 신경 못 써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청소년들의 생각을 “어린것이 뭘 아냐”고 묵살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읽는 ‘비청소년’(‘성인’이나 ‘어른’이란 단어가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전제한다는 이유로 ‘비청소년’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들이라면 자신의 사춘기 시절을 한번 돌이켜보자. ‘나는 이미 인격적으로는 완성태에 도달했으므로 부모나 교사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던 시기가 언제쯤이었는지.
그 청소년들이 지금 패스트푸드점, 호텔 연회장, 택배회사, 홍보행사 피에로, 배달 등 매우 다양한 업종에 걸쳐 ‘알바’ 노동을 한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큰 오해는 청소년들의 ‘알바’가 미래 사회에 정상적 직업을 갖기 전에 거치는 ‘임시노동’이고, 청소년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가 인격적 결함이 있는 일부 악덕 사업주 때문일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이 ‘알바’라고 부르는 일자리에는 이미 20~30대 청년들뿐 아니라 장년층 노동자가 진입했고 그 사람들에게 그 일자리는 일상적으로 출근하는 ‘정상적’ 직업이다. 그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노동기본권 침해는 혹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분야 업종의 사업주가 자행하는 일반적 현상이다. 따라서 청소년 노동이나 ‘알바’는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노동문제다.
노동문제, 특히 비정규직 고용에 대해 공부하거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문제점들 중 하나는 자료와 통계에 의존할 뿐 노동자들을 직접 만난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이 평소 내 생각이다. 청소년 노동에도 똑같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십대 밑바닥 노동>이란 책에서 청소년 당사자의 목소리로 잘 들을 수 있다.
“청소년 정책을 짜는 사람들이 청소년을 보는 게 아니라 청소년 노동을 본 비청소년 논문을 보고 정책을 짜요. 근데 그게 아니라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알바를 해보든가 그게 힘들면 실제 노동하는 청소년을 불러와서 같이 정책을 짜야죠.”
개인적으로 10대, 20대에 겪었던 경험이 그 뒤 오랫동안 나의 삶을 규정했다. 지금 10대, 20대가 겪는 ‘알바’ 노동의 경험이 앞으로 오랫동안 그들의 삶을 규정할지도 모른다. 청소년 ‘알바’ 노동을 정상적 일자리로 만드는 것 역시 ‘비청소년’의 할 일이다. 지금 같은 노동 현장을 미래의 노동으로 물려줄 수는 없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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