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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더 이상 ‘호남’을 팔지 마라! / 김의겸

등록 2015-05-13 18:24수정 2015-05-19 11:37

나도 호남이다. 하지만 호남 민심이 뭔지 모르겠다. 열이면 열 다 다른 얘기를 하면서도 그게 호남 정서란다. 어떤 이는 타협할 줄 모르는 ‘친노 강경파’가 문제라고 한다. 다른 사람은 문재인의 박정희 참배를 비판한다. 분명 각도가 전혀 다른데도 문재인 비토라는 점에서는 의기투합한다. 또 누구는 문재인의 ‘부산 정권’ 발언이 호남에 상처를 줬다고 하던데, 앞뒤 맥락 다 잘라버린 말 한마디에 호남 사람들이 10년 가까이 삐쳐 있다는 얘기가 돼버린다. 호남 사람을 다 속 좁은 좁쌀로 만들어 버리는 논리다.

천정배는 복잡한 민심을 ‘호남 정치 복원’이라는 깃발로 묶어냄으로써 선거에서 이겼다. 각양각색의 목소리에서 어설프게나마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이다. 천정배가 호남으로 졸아든 것 같아 안타깝지만, 그래도 호남 정치를 깔끔하게 정리해낸 뒤 훗날 통 크게 결합한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 될 듯하다. 그런데 몇몇 호남 의원들이 천정배가 이뤄낸 성과를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써먹고 있어 영 거슬린다. 천정배를 찍은 표가 그들을 지지하는 건 결코 아닐 텐데, 자꾸만 호남 민심을 들먹이면서 자신을 호남의 대변자로 내세운다. 당내 대결구도를 기어코 친노 대 호남으로 몰아가면서 두 세력의 틈새를 벌리고 있다.

박주선은 “정청래의 발언을 본 호남 사람들에게서 ‘호남을 무시하는 발언을 아무 거리낌없이 할 수가 있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한다. 주승용을 모욕하는 게 왜 갑자기 호남을 무시하는 걸로 변질이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일부러 친노에게 탄압받는 호남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싶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주승용도 정청래를 억지로 ‘친문’으로 분류하거나 공갈 발언이 문재인과 사전교감하에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다. 그는 ‘문재인의 비선이 있다고 보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광주에 내려가면서 호남 출신 수석 최고위원인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고 말했다. 스스로를 ‘호남의 맹주’쯤으로 여기지 않으면 나오기 힘든 발언이다. 그가 여수의 국회의원이고 전당대회에서 1등 한 건 맞지만 광주가 주승용의 ‘영역’이라는 건 처음 듣는 얘기다. 설사 자신의 연고가 있더라도 당대표가 일일이 사전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자신은 여수 시내를 돌아다닐 때 미리 지나갈 곳의 시의원들에게 일일이 보고를 하는지 궁금하다.

이들이야 생존 차원의 몸부림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한길까지 호남을 입에 올리는 걸 보면서 정말 문제가 심각하구나 싶다. 그는 “호남이 거부하는 야권주자는 있어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있다고 해도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문재인을 베는 데 호남이라는 칼날이 잘 들기 때문에 거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칼을 휘두르는 순간 당의 몸통도 반으로 잘린다. 당내 한 축을 이루는 친노 지지자들이 당을 외면할 것이다. 호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민심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역시 호남당이야”라고 혀를 차지 않겠는가. 김한길은 ‘거물’로 성장했다. 군소 계파의 수장 정도가 아니라 당내 모든 비주류 연합군의 총사령관이다. 그만큼 책임도 따르는 위치다.

김의겸 디지털부문 기자
김의겸 디지털부문 기자
호남 없이는 이길 수 없지만 호남만으로도 안 된다는 건 입증된 역사다. 권력투쟁도 좋고 계파싸움도 좋다. 하지만 정적을 제압하기 위해 호남 민심을 동원하는 건 내년 봄 농사지을 볍씨로 밥 지어 먹는 격이다. 사나흘 뒤면 5·18이다. 광주의 시민들이 ‘폭도’로 내몰려 처참하게 살해된 건 호남이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그 고립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호남을 위하는 척 걸핏하면 호남 민심을 들먹이지만 호남을 더 외롭게 할 뿐이다. 광주 영령이 통곡하고 있다.

김의겸 디지털부문 기자 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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