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한인섭 칼럼] 심야수사, 별건수사, 협박수사

등록 2015-05-10 18:56수정 2015-05-11 10:13

홍준표 경남지사가 검찰에 소환되어 17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18시간 조사받고 새벽 4시에 귀가했다. 잠시 검색해보니 특수부 사건에서 17~18시간 동안 조사받은 예가 허다하니, 장시간 심야조사는 수사 관행으로 굳어진 듯하다. 언론에서는 ‘고강도’ 수사라고 할 뿐, 그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다.

왜 17~18시간일까. 새벽까지 수사, 심지어 연 이틀 밤샘수사가 관행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 철야수사는 수면권을 침해하고, 진술거부권을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점차 사라졌다. 대신 철야수사라는 비판을 겨우 모면하는 심야수사의 꼼수가 자리잡았다. 피의자에게 새벽 3시는 심리적 방어력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간대라고 하니, 수사관 입장에서는 철야나 심야나 그게 그거다.

‘인권보호수사준칙’에 따르면 검사는 ‘자정 이전’에 조사를 마쳐야 한다. 자정까지의 조사도 인권침해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그 준칙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관행이 문제다. 피의자의 동의가 있으면 자정 후에도 조사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에 기대어서다. 그런데 그 동의가 자발적일까. 오늘은 이만 끝내고 다음날 오전에 또 출두하겠느냐고 압박하면 차라리 2~3시간 더 연장 조사를 받겠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18시간 장시간 조사는 ‘자발적 동의’를 빙자한 강제수사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피의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도로 심야수사 근절책을 정비할 일이다.

자정 전후에 조사를 일단락하고 이후엔 조서 열람을 하는 시간으로 할애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조서의 열람도 엄연한 수사의 일부다. 검사 신문이 끝난 뒤 남는 건 조서뿐이다. 그런데 그 조서는 녹취록도 아니고 녹취요약본도 아니다. ‘조서를 꾸민다’는 말이 실제로 통용된다. 피의자는 조서가 꾸며진 것인지 여부를 가려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심야조사까지 녹초가 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는 조서 글자가 눈에 안 들어온다.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대해 일일이 따지는 것도 언감생심이다. 대충 날인하고 지긋지긋한 조사실에서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없다. 그러니 조서 검토도 자정 이전에 끝내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변칙적 수사기법 중에서 더욱 심각한 건 별건수사다. 성완종씨가 경향신문 기자와 통화한 내용 중 한 대목을 보자. “검찰이 자원(비리)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제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하고, 또 “저거랑 제 것을 ‘딜’하라고 그런다”고 했다. 피의자의 다른 약점을 캐어 검사가 원하는 바를 불라고 압박하고, 말 안 들으면 처자식과 친인척의 비리까지 추궁하겠다고 위협한다면 견딜 재간이 없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피의자의 다른 약점을 잡아 소위 ‘딜’을 한다면, 그건 또 다른 변칙으로 지탄받을 짓이다.

검찰청 출두를 앞두고 자살을 택한 인사가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가 변칙적인 별건수사, 협박수사, 연좌수사로 심리적 옥죄임이 극에 달한 탓이 아닌가 짐작된다. 드러난 잘못에 대해서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인사들도 가족들 들먹이고, 회사 망치겠다고 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드는 데까지 이르면 눈앞이 캄캄하고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자살이 유일한 출구라는 극단심리가 생겨날 수 있다. 검찰 수사와 관련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기왕의 수사 관행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 수사는 원칙대로 철저히 해야 한다. 그러나 18시간 조사는 자랑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관행일 뿐이다. 가혹행위에 해당할 심야수사는 사라져야 하고, 자정 이후까지 피의자를 붙잡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 피의자의 생체리듬을 고려하고 인격성을 존중하는 수사가 적법한 관행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피의자가 누구든 마찬가지다. 협박수사, 연좌수사, 별건수사의 관행도 고등 수사기법으로 내세울 게 아니라, 편법이고 부당하며, 불법일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특히나 사람 잡는 수사의 악습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검찰권으로 정치보복 ‘미국의 윤석열’은 어떻게 됐을까 1.

검찰권으로 정치보복 ‘미국의 윤석열’은 어떻게 됐을까

[사설] ‘내란 수사 대상자’ 서울경찰청장 발령 강행한 최상목 2.

[사설] ‘내란 수사 대상자’ 서울경찰청장 발령 강행한 최상목

[사설] 지난해도 30.8조 ‘세수펑크’, 엉터리 재정운용 언제까지 3.

[사설] 지난해도 30.8조 ‘세수펑크’, 엉터리 재정운용 언제까지

‘중증외상센터’를 보며 씁쓸해한 이유 [뉴스룸에서] 4.

‘중증외상센터’를 보며 씁쓸해한 이유 [뉴스룸에서]

트럼프의 ‘영토 먹방’ [유레카] 5.

트럼프의 ‘영토 먹방’ [유레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