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에이(DNA) 안에 고고학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기나긴 시간의 진화 역사를 전하는 과학 뉴스에서 유전체(게놈)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됐다. 유전체 고고학이니 디엔에이 연대측정이니 하는 두 말의 낯선 조합은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예컨대 이런 의미였다. 개와 늑대의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비교해보자.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으니, 이제 디엔에이에 그만큼 차이를 새겨넣은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두 종은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이래 수만년 동안 서로 멀어지며 진화했다는 게 유전체 분석에서 제시된다. 현재의 정보에서 먼 과거를 짐작할 수 있다니, 디엔에이는 말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분자시계’로 불릴 만하다.
이런 디엔에이 고고학은 1960년대 이래 발전해왔다. 이전까지 화석 물질을 분석해 시간을 발굴했다면, 이젠 화석 없이 현재의 디엔에이 차이만을 분석해도 거기에 숨은 진화의 계보와 시간을 캐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생인류인 ‘최초의 아담과 이브’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각지로 퍼졌다는 인류 진화의 큰 줄거리는 현재 인류의 디엔에이를 비교하고 추적해 찾아낸 디엔에이 고고학의 성과로 꼽힌다.
들을수록 궁금해지는 건 그렇게 시간을 추적하는 방법이다. 대체 디엔에이 염기 정보에서 어떻게 시간을 찾아낸다는 걸까? 국내 연구자한테 몇차례 설명을 들을 기회도 있었지만 전문 연구방법을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당연히 어려웠다.
어렴풋이 이해한 바로는, 디엔에이 연대측정은 세대를 거치며 디엔에이 염기서열엔 미미한 변이가 일어나는데 거기엔 일정한 속도가 있다는 전제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변이 속도’를 정확히 안다면 변이의 양은 시간으로 환산할 수 있다. 만일 자연변이 속도가 1세대마다 20개꼴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면, 변이 개수 1000개는 50세대의 시간을 말해준다고 어림짐작할 수 있는 셈이다.(물론 실제 방법이 이렇게 단순할 리는 없다.)
그런데 최근 디엔에이 변이 속도를 두고서 한창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과학저널 <네이처>는 그동안 인류 진화 역사를 추적하는 데 크게 기여한 디엔에이 고고학의 ‘변이 속도’와 관련해 근래 몇년 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분명한 결론이 내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인간 유전체 분석 기술이 발전하고 부모-자식 세대의 디엔에이 차이를 분석한 연구가 쌓이면서, 인간의 변이 속도가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2배가량 더 느린 것으로 측정됐다는 것이다. 화석 증거 없이 디엔에이만으로 추적하는 연구에서 예전에 5만년이던 시간은 이제 10만년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
느려진 디엔에이 시계는 많은 물음을 던졌다. 왜 인간의 디엔에이는 변이 속도가 느린 걸까? 만일 다른 종의 디엔에이 시계도 저마다 다르다면 종마다 변이 속도는 다르게 계산돼야 하는가? 한편에선 느려진 디엔에이 시계 덕분에 그동안 애를 먹이던 시간의 수수께끼들이 풀렸다. 탄소 연대측정에서 10만년 전의 것으로 밝혀진 이스라엘의 한 인류 화석은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온 시기보다 한참 앞서서 모순이었는데, 느린 변이 속도로 계산하면 두 사건의 시간 순서는 모순 없이 설명된다는 것이다.
문득 현대 우주론의 초기에 애먹이던 우주 나이 문제가 떠오른다. 1950년대 무렵까지도 우주 나이는 들쭉날쭉했으며 새로운 관측·해석이 등장하면서 달라져 한때엔 지구 나이보다 적어 논쟁거리가 됐다. 생명 진화의 시간을 추적하는 디엔에이 고고학은 지금 눈금자를 한창 다듬는 중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미 디엔에이 고고학은 우리 몸의 30억 염기쌍 디엔에이가 기나긴 시간의 산물이라는 경이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cheolwoo@hani.co.kr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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