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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비리 온상에서 경제가 살 수 있나? / 박순빈

등록 2015-04-19 19:02

3월12일 오후 이완구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라며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내 입에서는 낑낑거리는 웃음이 나왔다. 듣기 힘들 때 그런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총리는 부패 척결 추진을 “당면한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완구 국무총리는 누워서 폭탄 발사한 꼴이 됐다. 더욱 낑낑거리며 웃을 수밖에 없다.

지난 한달 사이에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도 자폭적이다. 이 총리가 부패 척결을 선언한 지 닷새 뒤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며 ‘국무총리께서 추진하는 부패 척결’에 범정부적 역량을 결집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부패 척결 작업에 나서야 할 국무총리는 척결 대상 1순위 후보에 올라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문제가 있는 부분을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는, 국무총리까지 연루된 ‘성완종 게이트’ 파문에 대한 나름의 원칙이 담겨 있다. 성역을 두지 않고 뿌리까지 캐어 덩어리를 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어디, 누구까지의 비리가 척결 대상인지 아리송하다.

고 성완종 회장이 정관계 로비에 쓴 검은돈은 대부분 경남기업에서 나왔다. 경남기업의 운명은 ‘리스트’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회장만큼이나 기구하다. 올해로 설립 64년째를 맞는데 지난 15일 주식시장에서 퇴출(상장폐지)됐다. 적자 누적으로 상장기업으로서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남기업은 물론 협력업체 1800여곳 직원들의 생계가 위태로워졌다. 금융권 손실 추정액도 약 1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경남기업의 몰락에는 대주주나 경영진의 책임이 가장 크다. 더 철저하게 따질 경우 그동안 경남기업 돈으로 혜택을 받은 외부의 ‘비리 세력’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박 대통령이 1980년대 초 3년 동안 살았던 서울 성북동 집은 경남기업에서 무상으로 지어준 것이다. 당시 시가로 약 7억원짜리다. 강남의 중형아파트 다섯채쯤에 해당하는 재산이다. 박 대통령이 말한 ‘과거부터 켜켜이 쌓여온 적폐’에 이런 공짜 재산 취득은 포함되지 않는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신뢰 있는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여러차례 다짐한 바 있다. 그런데 집권 뒤 지금까지 제대로 이행한 약속을 찾기 어렵다. 경제 민주화 정책들은 일찌감치 실종했고, 복지 공약은 대폭 축소된 가운데 그마저도 갈수록 흐지부지하는 양상이다. 경제 살리기는 구호만 요란할 뿐 성과가 별로 없다. 얼마 전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7%에서 3.3%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한국은행은 3.4%에서 3.1%로 낮췄다. 지난해(3.3%)보다 올해 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예고이다. 경제 회복세가 탄력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주저앉는 흐름으로 가면 기업이든 가계든 경제 주체들의 심리는 더 위축된다.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할 상황이다.

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무엇보다 정부의 신뢰 회복이 우선이다.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도 마찬가지다. 비리의 온상에서 힘을 키운 지금의 권력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

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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