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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성완종 수사팀의 막내 검사들을 위하여 / 박용현

등록 2015-04-16 18:42수정 2015-04-16 21:07

이런 가정을 해보자.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가운데 순순히 자백하는 사람(그런 사람은 없다고 봐야겠지만) 말고는 한 명도 기소하지 못했다. 그러려니 해야 할까? 더구나 그 뒤 누군가의 추가 폭로로 2차 특별수사팀이 구성되고 재수사 끝에 무더기 단죄가 이뤄졌다. 1차 수사팀은 뭐가 될까? 더더구나 2차 수사팀도 핵심 의혹인 2012년 대선자금은 파헤치지 못했다. 그 상태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그 뒤에야 또다른 결정적 폭로가 나옴으로써 3차 수사로 이어져 결국 박근혜 대통령 대선자금의 불법적 전모가 드러났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치는 건 어차피 어려운 일이었으니 다 이해한다고 1·2차 수사팀 검사들의 어깨를 두드려줘야 할까? 더더더구나 1·2차 수사 당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단서가 있었는데도 윗선의 압력에 밀려 끽소리도 못하고 수사를 접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윗선이 나쁜 놈들이지 검사들이야 무슨 힘이 있었겠느냐고 이해해줘야 할까? 먼 훗날, 1·2차 수사에 참여했던 막내 검사 한 명이 대법관 후보자가 됐다. 그는 “당시로선 최선을 다했다” “막내 검사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그를 정의와 진실의 최후 심판자인 대법관에 앉혀야 할까?

현실로 돌아와보자.

28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성완종 리스트처럼 전두환 독재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경찰은 사건의 실상을 최대한 축소해 고문 경찰관 5명 가운데 2명에게만 책임을 씌웠다. 검찰은 그렇게 자백한 2명만 기소했다. 범인 중 한 명이 공범의 존재를 털어놨지만 검찰은 묵살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나온 뒤에야 2차 수사가 진행됐다. 고문 경찰관 3명과 중간 간부 3명이 추가로 기소됐다. 하지만 검찰은 축소·조작의 지휘자가 강민창 치안본부장이란 사실을 알고도 또 묵살했다. 그 상태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이듬해 또다른 폭로가 나오고 나서야 강 치안본부장이 기소됐다. 청와대·안기부·법무부 등 권력 핵심부가 개입한 내막은 여전히 손도 대지 못했다. 그 수사가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하는 박상옥 당시 막내 검사가 대법관 후보자가 됐다.

하기야 검찰은 늘 그래 왔다. 기생동물의 숙명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숙주의 더러운 부위가 있어야 먹고산다. 허약한 숙주는 포획되지만, 강한 숙주는 불필요한 양분을 적당히 나눠주며 기생동물도 살찌운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펄떡이는 불의한 권력을 단숨에 사냥하는 검찰상은 이상 속에만 존재한다. 부당하게 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상사에게 직무유기죄를 묻는 당당한 검사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 많은 이들이 의심하는 이유다. 벌써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그는 수사 대상 중 한 명이다)가 검찰 수사에 ‘물타기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언론의 의혹 제기를 탓하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수사팀 막내 검사들의 운명에 대해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처럼 재수사에 재재수사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박용현 논설위원
형사소송법 교과서 설명대로 “소명의식이 불충분하면 검사는 순전한 기술관·행정관 내지는 정치적 시녀로 전락하고 만다.” 이미 그런 세상에 물든 윗선에게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정의감 불타는 막내 검사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박상옥 선배처럼 대충 수사하지 마시라. 어쩔 수 없이 창피한 수사 결과를 내야 한다면 차라리 직을 내놓으시라. 그리 못하겠거들랑 하다못해 먼 훗날 대법관 같은 존엄한 자리는 꿈도 꾸지 않겠다는 양심의 다짐이라도 굳건히 하시라.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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