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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북한 핵 협상’의 동력은 어디에

등록 2015-04-06 18:46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의가 이뤄졌다. 한마디로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공을 들인 결과다. 미국과 이란 내부의 강경파와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반발하고 있지만 큰 흐름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핵 비확산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 이란의 핵 포기는 강대국 중심 비확산 체제의 승리다. 이란으로서도 지역 내 위상이 확보되고 서방과의 관계가 개선된다면 꼭 핵무기를 개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둘째,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주적이 된 이슬람 극단세력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다. 조지 부시 미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 이후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이슬람국가(IS) 문제나 최근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는 ‘수니-시아파 대전’ 문제는 이란의 협력 없이는 풀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 중동 어느 나라도 지역 패권을 주장할 수 없도록 세력균형 상태를 만드는 게 그것이다. 미국-이란 관계 확대는 이란의 팽창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다른 나라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외교정책 기조와 관련해 “개입은 하되 우리의 역량은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이와 상통한다.

근대 이후 수백년 동안 이어진 영국과 미국의 패권은 크게 세 가지 역량을 토대로 한다.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이 그것이다. 경제력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지금 미국은 세계 총생산에서 20%가량을 차지하지만, 19세기 초·중반 영국의 몫은 5% 정도였다. 군사력의 기초는 해군력이다. 지구 전체의 해양체제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이 바로 근현대 패권의 핵심 요소다. 모든 육지를 지배할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지만, 어느 한 나라의 힘이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커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세력균형이다. 외교력도 여기에 집중된다.

미국은 10개의 대형 항공모함 전단을 유지한다. 지구촌의 대형 항모는 이것이 전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프랑스, 중국 등이 중형 항모를 하나씩 갖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세력균형에만 성공한다면 패권은 유지될 수 있다.

이런 패권전략은 대체로 성공적이었지만 위기도 몇 차례 있었다. 위기는 무리하게 육지 나라들을 직접 점령하려 했을 때 왔다. 미국의 자원이 특정 지역에 묶이고 적대감에 둘러싸일 때가 바로 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트남전과 이라크 침공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패색이 짙어지던 1970년대 초반 중국과의 수교에 나서 소련을 겨냥한 세력균형을 만들어냈다. 이라크 침공 이후 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란 핵 합의라는 결실을 맺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오바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이라는 세력균형 정책은 일본과 인도, 나아가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등 중국을 둘러싼 여러 나라들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완성된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확대를 비롯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필수다. 그렇게 될 때까지 북한이라는 ‘아주 위험하지는 않지만 눈에 띄는 적’은 좋은 빌미가 된다. 올 들어 미국의 여러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북한의 핵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 그렇다기보다는 미국 안 분위기를 반영한 측면이 크다.

북한 핵 문제는 이란 핵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다. 북한은 적어도 여러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 물질을 확보하고 세 차례나 핵실험을 했지만 이란은 우라늄 농축 능력을 보여준 정도다. 그럼에도, 미국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사실상 방관정책인 ‘전략적 인내’만을 얘기한다. 우선순위가 핵 문제 해결에 있지 않은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어떻게 해야 북한 핵 합의가 가능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지금 그 동력이 나올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북한 핵 문제를 풀지 않으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을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북한 핵 문제가 풀리면 한반도 자체가 세력균형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에 설득해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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