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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의 숲] 평택 2함대를 다녀와서

등록 2015-04-02 18:17수정 2015-08-04 00:49

천안함 침몰 사건의 5주기를 한달 앞둔 2월말, 파손 선체가 보존된 평택 2함대를 다녀왔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과학 논문을 기사로 쓴 적이 있는데, 파손 선체를 직접 보라는 한 블로거의 권유를 듣고서 그와 함께 평택으로 향했다.

우리 둘은 2함대로 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천안함 침몰의 핵심 증거인 ‘1번 어뢰’와 파손 선체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사진으로 기록하며 나름대로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 2함대엔 그를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여러 차례 온 터였지만 그는 이날도 연신 셔터를 누르며 선체 구석구석을 기록했다. 평범한 시민한테 이런 열정을 준 힘은 대체 뭘까? 그는 ‘과학적인 설명’을 원했다. 1번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합동조사단의 결론에서도, 이와 다른 대안의 시나리오들에서도 속시원한 설명을 얻지 못해 자신이 기록자가 됐다는 것이다.

다시 3월26일, 해군 병장 46명을 앗아간 비극적 사건의 5주기를 맞았지만 우리 사회가 신뢰하는 사건의 실체는 여전히 분명치가 않다. 2010년 9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선, 합조단 결론을 신뢰한다는 응답(32.5%)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35.7%)이 팽팽했다. 2015년 한 언론매체가 밝힌 여론조사에서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47.2%)은 신뢰한다는 응답(39.2%)보다 많게 나타났다. 신뢰와 불신의 양분은 좀체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사이 5년 동안 천안함 사건의 주요 증거인 흡착물질, 지진파, 1번 글씨를 다룬 논문이 국제학술지에 10편 가까이 발표됐다. 일부는 합조단을 뒷받침하고 대부분은 판이한 해석과 결론을 제시한다. ‘천안함 과학 논쟁’은 실재하는 현실이다.

그 논쟁엔 일반 과학 논쟁과는 다른 점도 있다. 보통 과학 논쟁에선 연구물에 의문이 제기될 때 대체로 누구라도 재현과 검증에 나설 수 있겠지만, 과거 사건을 추적하는 경우엔 증거물이 공개되지 않을 때 재현과 검증에 한계가 있다. 그때 거기에서 일어난 그 사건을 추적하는 연구에선 제시된 증거를 해석한다 해도 어긋나는 증거나 몰랐던 증거가 제시될 때 결론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천안함 과학 논쟁이 의미있는 이유는 합조단 보고서가 과학적 조사의 결과물이고 그래서 과학적 설명이 여전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분석장비, 데이터, 실험, 시뮬레이션으로 가득한 과학적 보고서에 과학적 의문이 제기된다면 당연히 과학의 언어로 해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수중폭발을 추적하면서 지진파 기록은 왜 소홀히 다뤄졌을까? 폭발량과 수심을 계산하는 공식에 중요한 값인 버블주기는 엄밀하게 검증된 것인가? 선체 용골의 절단과 스크루의 휜 형상을 재현하는 데 시뮬레이션은 왜 까다로움을 겪어야 했나? 흡착물질의 분석과 실험 절차는 어떠했는가? 이런 물음들은 합조단의 과학 활동이 적절했느냐고 묻고 있다.

천안함 논란이 과학 논쟁만으로 풀리리라 보는 것도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다. 반박과 재반박은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합조단의 과학 활동은 발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구논문 발표 이후에 의문이 제기되고 논쟁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질 때 과학자들이 여러 논란을 거치며 점차 신뢰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흔히 본다. 그러면서 과학적 설명은 신뢰를 넓힌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열정적 기록자인 블로거와 함께 안보전시관에 가지런히 놓인 희생 장병의 개인물품을 보면서, 이름이 또박또박 새겨진 복도를 지나면서 슬픔과 먹먹함을 느꼈다. 비극적 사건의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와 불신이 팽팽한 이 상황은 대체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잊거나 회피하자는 게 아니라면 논란을 푸는 과정이 모색돼야 한다.

오철우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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