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 잠수정의 타격’이라고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그리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계속되는 보수세력의 ‘종북몰이’ 굴레에서 벗어나 ‘안보정당’이 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리라. 하지만 문 대표의 발언이 과연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우선 문 대표는 ‘종북몰이’의 속성을 간과했다. 우리 사회의 ‘종북몰이’는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짜놓은 ‘프레임’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문 대표는 종북몰이의 대표적 소재인 ‘천안함 폭침’을 공식 인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수세력의 ‘종북몰이’가 ‘프레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인정한 셈이 됐다.
이제 새정치연합은 ‘종북세력’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보수세력의 잇단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천안함 폭침’을 인정했다고 ‘야당도 안보정당이 됐으니 우리 동반자’라고 평가해주리라 기대했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문 대표 발언 이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제 이것(북한의 소행)을 인정한다고 하면 지난 5년간 잘못 주장한 것에 대해 책임은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압박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사상 검증’이 이어질 것이다.
문 대표는 또 남북관계에서 천안함 사건이 갖는 의미를 너무 가볍게 본 게 아닌가 싶다. 천안함 사건 이후 취해진 2010년의 5·24 조치로 남북관계는 사실상 파탄이 났다.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와 천안함 폭침은 남쪽의 조작극이라는 북한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타개책을 못 찾고 있다. 남북 정부 모두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지 않는 한 접점을 찾기 힘든 외통수에 몰려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재자로서의 야당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남북 화해를 진정으로 바라는 야당이라면 그런 시대적 책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문 대표가 정부 발표에 100% 동조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활용할 야당의 중요한 지렛대 하나를 잃었다. 이제 야당도 정부와 보조를 맞춰 천안함 폭침을 사과하라고 북한에 요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러지 않거나 사과 요구 강도가 낮으면 천안함 폭침 인정의 진정성까지 의심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보정당’을 꿈꾸던 야당은 실리도 명분도 다 잃게 된다. 남북관계 개선도 더욱 힘들어질 게 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이 과학적 차원의 논쟁이라는 점이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조사 결과를 ‘과학적 결론’이라고 하고 있지만, 국내외 일부 관련 학자들은 이를 과학적으로 잘못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는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에 의한 피격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의 문제다. 정부는 2010년 5월20일 민관합동조사단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천안함 침몰이 ‘수중폭발’에 의한 것이며, 선체의 변형 상태로 볼 때 ‘비접촉폭발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외 일부 과학자들은 조사단의 천안함 흡착물 분석 데이터 등에 오류가 있다며 ‘비접촉 수중폭발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과학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수두룩하다. 천안함 진실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문 대표는 이런 과학적 논쟁을 국가 안보라는 정치적 논쟁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럼으로써 어느 정도 정치적 이득은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천안함의 진실이 밝혀지는 걸 결과적으로 차단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문 대표가 ‘천안함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실은 권력의 강압이나 정치적 타협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문에 대한 치열한 과학적 논쟁을 통해 의문이 하나하나 해소될 때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렇게 해서 확인된 진실만이 설득력을 갖는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정치 지도자라면 진실을 찾는 과정이 아무리 불편하고 험난하더라도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문 대표가 너무 쉬운 길을 가려는 것 같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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