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취임식을 한 홍용표(51)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내각에서 가장 젊은 축이다. 하지만 2006년 취임 때의 이종석 전 장관에 비하면 3살이 더 많다. 홍 장관의 직전 직위가 청와대 비서관(1급)이어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으나 거꾸로 청와대 쪽과 더 잘 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정책기조와 추진력이다.
동북아의 안보 관련 사안은 대부분 북한과 엮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북한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표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은 더 뚜렷하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북한 문제’와 그렇지 않은 사안이 뒤섞이는 현상이 심해진다. 예컨대 핵·미사일·탈북자·인권 등은 북한 문제인 반면 합동 군사훈련, 고고도 미사일방어(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등은 북한을 전면에 내세우더라도 주된 동력은 그렇지가 않다.
사드 문제는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진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강조하지만 핵심 목적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미사일방어(엠디) 체제를 완성하는 데 있다. 폴란드 사례가 이와 비슷하다. 조지 부시 미국 정부는 2002년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막아야 한다며 폴란드에 엠디 기지를 설치하는 방안을 밀어붙였다. 진짜 목표가 러시아였음은 물론이다. 망설이던 폴란드는 2008년 미국과 합의했으나 곧 등장한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를 백지화했다. 하지만 미국-러시아 관계가 나빠지고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동유럽 및 옛 소련 지역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요격미사일 기지의 폴란드 배치는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이제는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유럽 엠디 체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폭발한 미-러 대결의 한 원인이기도 하고 결과이기도 하다. 이는 사드가 우리나라에 배치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해마다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북한 위협에 대비한 방어용’이다. 하지만 훈련 내용은 상황에 따라 확장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집요하게 한-미-일 합동훈련을 추구하는 것은 훈련의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원칙적으로 전함과 전투기는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다.
순수한 북한 문제와 그렇지 않은 사안은 성격과 해법도 차이가 있다. 전자는 평화 구축 과정과 함께해야 제대로 해결될 수 있으며 한반도 통일로 완성된다. 후자는 갈등과 협력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대결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곧 양쪽은 평화의 길과 대결의 길로 나뉜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 한가운데에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체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북한 문제다. 이는 동북아 차원에서 협력과 공존을 추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거꾸로 우리가 대결의 한쪽에 선다면 북한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옮겨놓은 것처럼 뒤엉킬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어느 나라도 북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 해결의 동력은 우리나라에서 나와야 하고, 그 출발점은 남북 관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홍용표 장관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그는 안보 강경파가 주도하는 현 정부 외교안보통일팀 가운데서도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꼽힌다. 하지만 취임사와 청문회에서 보인 모습은 미흡하다. 남북 관계를 풀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방법과 비전은 취약하다. 청와대 비서관에서 차관을 건너뛰고 장관으로 지명된 게 ‘고분고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류길재 전 장관은 퇴임 직전 “솔직히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와도 되는 자리 같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 통일부 위상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지금 구조에서는 일을 하려 해도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는 얘기일 것이다. 변명처럼 들리지만 많은 부분 진실이기도 하다.
지금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남북 관계를 매개로 동북아 전체 분위기를 바꾸겠다는 결기가 필요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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