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현 논설위원
여성 연예인들의 군대 체험을 담은 <일밤-진짜 사나이>를 보면서 ‘여군들도 정말 혹독한 훈련을 받는구나’ 새삼 느꼈다. 별을 세 개나 달고 제대한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그런 여군을 ‘하사 아가씨’라고 불렀다. 이게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시대의 초상이다.
여성을 직무에 맞지 않는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구시대적 사고는 군대에만 있을까. 그 못지않게 완강한 편견에 지배당하는 직역이 사법부다. 대법원은 구성원 14명 중 여성이 2명(14%), 헌법재판소는 9명 중 1명(11%)에 그친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나라에서도 법원, 특히 상급 법원일수록 여성에겐 높은 장벽이었다. 하지만 최근 20~30년 사이 세계는 급변했다. 앞서는 나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최고 법원의 여성 비율을 30%선까지 확보했다.
1981년에야 첫 여성 대법관을 배출한 미국 연방대법원은 현재 9명의 대법관 중 3명(33%)이 여성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6명 중 5명(31%),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당연직인 전직 대통령을 빼면 9명 중 3명(33%)이다. 47개 유럽 국가를 관할하는 유럽인권재판소는 각 나라에서 한 명씩 재판관을 뽑아 오는데, 현재 4명의 공석을 제외하면 43명 중 14명(33%)이 여성이다. 더욱 놀라운 나라들도 있다. 캐나다·스웨덴·뉴질랜드는 대법원장이 여성이다. 캐나다는 1990년 첫 여성 대법관이 나온 지 불과 10년 만에 여성을 대법원장으로 맞았다. 현재 대법관 구성도 남성 5명, 여성 4명(44%)이다. 스웨덴도 여성이 44%다. 여성이 절반에 이를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들 나라가 ‘금녀의 성채’였던 최고 법원에 여성을 서둘러 모셔가는 이유는 뭘까. 양성평등이라는 원칙 때문만은 아니다. 사법부 자신을 위해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법원은 주권자의 뜻과 동떨어진 인물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죽은 대법원이 된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대법원의 얼굴이 국민과 ‘닮아야’ 한다. 즉 남녀, 계층, 지역, 종교 등 여러 요소별로 대법관의 구성비가 전체 국민의 구성비와 최대한 근접할 때 ‘대법원이 우리의 다양한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면서 판결하고 있구나’라는 믿음을 줄 수 있다. 영국 대법원에서 유일한 여성인 헤일 대법관은 세계적 추세에 뒤처진 영국 사법부를 비판하며 말했다. “절대군주나 귀족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민주국가라면 사법부 구성에서 특정 집단이 아닌 사회 전체를 반영해야 한다. 특히 성별 다양성을 갖추는 것은 옳을 뿐 아니라 절실한 일이다.”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재도 귀담아들을 말이다. 판결과 결정이 경외감을 일으키기는커녕 ‘그들만의 판단’이라는 불신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성의 다양성 요구를 계속 무시해온 결과다. 특히 여성 비율은 일본(20%)보다 낮고 중국(13%) 정도에 머무는 수준이다.
지금 대법관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어떤 구성집단과 ‘닮은’ 인물로 채워야 할까. 민주화운동을 하다 물고문당해 숨진 박종철 사건을 수사하면서 축소·은폐 지시에 침묵으로 따랐던 검사 박상옥으로 대표되는 집단, 민주와 정의는 적당히 외면하며 누릴 건 누리고 살아온 이들인가? 아니다. 이 나라 주권의 절반을 쥐었으되 대법원에서는 14%밖에 대표되지 않는 집단, 바로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 이 절실한 시대적 요청에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하필이면 무자격 후보자를 골라 ‘그들만의 리그’를 채우려 드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모습은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 시대의 또 하나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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