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제우스와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사이의 아홉 딸은 뮤즈라 불리며 학문과 예술을 관장한다. 서양의 많은 언어에서 ‘음악’이란 단어의 어원이 ‘뮤즈’에서 비롯되었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열번째 뮤즈’라는 영광스런 별칭을 얻은 여인이 있었다. 탁월한 지적, 예술적 재능을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바로 그 재능 때문에 그 여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세월은 아직 여성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기엔 아둔하기만 했다.
후아나 이네스 수녀는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멕시코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외할아버지의 농장에서 자라났다. 세살에 읽고 써, 여덟에는 시를 짓고, 열셋에는 라틴어를 가르쳤으며, 아스텍 토속어로도 시를 남겼다. 여성에게 금지된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 남장을 하고 다니도록 해달라고 어머니에게 졸랐으나 거부되었다. 이미 멕시코 전역에서 유명했던 그를 시험해보고자 총독은 열일곱살 이네스 앞에 신학자, 철학자, 법학자, 시인들을 소집하여 질문을 퍼부었다. 과학과 문학에 관한 무작위적 질문에 대해 아무 준비도 없이 대답해야 하는 이 모임은 오히려 그의 명성을 더해줄 기회가 되었을 뿐이다.
수녀원에 들어간 것도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속계에서 직업을 가지면 공부할 자유가 위축될 것이기에 그는 여러 청혼을 거절하고 제롬 수녀원에 의탁했다. 총독과 총독 부인이 그를 후원하여 그의 글이 에스파냐에서도 출판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멕시코 대주교를 비롯한 고위성직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장서와 악기와 실험 기구를 포기해야 했고, 마침내 참회의 글을 쓰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 글들조차 타고난 시적 정서를 반영했다. 그 글 중에는 “나, 가장 나쁜 여성”이라는 서명이 들어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흑사병에 걸린 다른 수녀들을 간호하다가 사망한 그를 기리는 전기를 남겼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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