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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데드덕’의 마지막 선택

등록 2015-03-01 19:42수정 2015-03-01 23:24

1960년대 후반 필자가 중학생일 때 종종 서울 광화문에 동원되어 나갔던 기억이 난다. 대통령 행차를 환영하기 위해서였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또 한겨울 추위 속에서 한 시간 넘게 차도를 따라 줄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박정희 대통령의 행차 차량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대통령은 코빼기도 안 보이니 휙 지나가는 시꺼먼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태극기를 흔들기 시작하며 함성을 질러댔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다니던 중학교가 서울 시내 광화문 가까이 있었던 터라 학생 동원이 쉬워 다른 학교보다 더 자주 동원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자 기억에 꽤 자주 동원된 것으로 미루어 추측하건대 그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의 해외순방길뿐만 아니라 지방행차길에도 나가서 환송, 환영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린 나이였던지라 땡볕 더위든 한겨울 추위든 개의치 않고 그냥 수업 빼먹는 것만 마냥 좋아하며 친구들과 노닥거렸던 기억도 난다.

그러더니 1970년대 중반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행차할 때 시민들과의 거리를 멀리하기 위해 이중삼중의 경계선을 치고 통행을 불편하게 했다. 나중에는 대통령 행차가 극비 상황이 되었던지 오직 티브이 뉴스로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1970년대 말 필자가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 어느 날 필자가 근무하던 사무실에 정보계 형사가 와서 대로변을 향한 창문 앞의 화분을 다 치워버리고 몇 시간 동안 아무도 창문 근처에 얼씬 못하게 경계를 서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정보계 형사에게 대통령이 지나가기 때문이냐고 넌지시 물어보니 대답은 안 하고 웃기만 했다. 국민은 대통령의 코빼기만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휙 지나치는 ‘차빼기’도 볼 수 없게 될 정도가 되었다.

국민과의 거리가 십만리는 되어버린 대통령. 주변에 이중삼중의 울타리를 친 대통령. 대통령이 골프를 치러 나가면 전후좌우 수 킬로미터 내 개미 한 마리 얼씬 못하게 군이 경계를 섰다던가?

국민과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충성도에 따라 동심원으로 배치했던 박정희의 친위부대 중심의 인사정책, 검경을 동원한 공안통치, 이후락 비서실장·중앙정보부장으로 상징되는 정보통치, 영호남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이간계 정치, 그리고는 경제만 잘되면 영구집권 독재도 용인될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국민과의 모든 소통을 닫고 ‘올인’했던 성장 일변도 정책, 무리한 중화학공업화 정책. 그 결과는 대규모 중화학공업 부실화, 외채 위기, 민생 파탄이었다. 사실 1970년대 말 박정희의 18년 독재를 끝낸 민중항쟁은 시장통 상인들의 민생 파탄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박정희의 말기 행태를 너무 빨리 보는 것 같아 걱정이다. 박정희 18년 과정을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2년 만에 보는 기분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여론조작이 하나씩 확인되면서 대통령직의 정통성마저 흔들리기 시작하니 요지부동하던 박 대통령이 드디어 변한 척한다. 대통령 취임 이후 변한 척하는 시늉조차 않더니 그래도 이제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급하기는 급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면 박정희 말기 때의 판박이다.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각하, 각하’ 하면서 충성심만 보이면 속이 썩은 ‘양파’ 총리라도 좋다는 생각. 그런 총리의 임명을 강행하기 위한 지역주의 이간계. 그로 인해 ‘충청의 치욕’이 되어버린 충청의 자존심. 무력해진 총리. 데드덕 대통령과 ‘레임치킨’ 총리가 되었다. 비서실장으로 변신한 국정원장의 정보통치, 친박 정무특보로 울타리를 친 불통정치, 충성파로 둘러싼 청와대와 내각의 불통쇄신. 필자가 지난번 칼럼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단지 변한 척할 뿐이다. 그리고 ‘경제에 올인’해서 ‘한 방에 인생역전’하겠다고 한다.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대학생들도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박 대통령은 노는 사람하고만 노나 봐. ㅋㅋ. 그런데 다 늙은 사람들밖에 없어. ㅎㅎ”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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