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치르는 와중에 부산으로 피난가 있던 국회에서 1953년 처음 제정된 근로기준법에도 생리휴가 제도가 있었다. 제59조에 “사용자는 여자가 생리휴가를 요구하는 경우에는 월 1일의 유급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한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실제로 생리휴가를 사용한 시기는 내 기억으로 70년대 중반 무렵이다.
한 섬유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천신만고 끝에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생리휴가 쟁취’를 첫 사업 목표로 정했다. 노동자들이 생리휴가를 신청했지만 회사는 “선례가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리휴가를 신청하고 회사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무단결근 처리해버렸다. 노동조합 대책회의에서는 생리휴가를 서면으로 신청해 근거를 남기기로 했고 우선 위원장이 솔선수범으로 ‘생리휴가 신청서’를 작성해 사무실에 제출했다. 나중에 담당 직원으로부터 “산부인과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하라”는 연락이 왔다.
노조위원장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르며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되더라”고 했다. 사무실로 달려간 위원장은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마자 소리쳤다. “야, 이 무식한 새끼들아! 진단서가 뭐가 필요해! 내가 여기서 벗으면 될 거 아냐!” 위원장이 정말로 옷을 반쯤 벗었을 때, 직원 몇명이 급히 달려와 말렸다. 그날부터 생리휴가 제도가 실시됐고 쉬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생리휴가수당을 지급했다. 그런데 월급날 급여봉투를 받아보니 남성 노동자들에게까지 모두 생리휴가수당이 지급됐다. 회사도 그만큼 무지했다. 저녁 소모임에 참석한 여성 노동자들이 남자들에게 “너희들은 어떻게 생리하냐?”고 놀리기도 했다. 법에 보장된 권리를 노동자들이 하나씩 찾아가는 일은 그렇게 눈물겨웠다.
최근 한 방송사 기자가 사내 익명게시판에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그 기자가 과거 ‘일베’ 게시판에 “생리휴가는 사용 당일 착용한 생리대를 직장 여자상사 또는 생리휴가감사위원회(가칭)에 제출하고 사진자료를 남기면 된다”는 글을 올린 것도 드러났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그 기자 한 사람뿐이랴.
우리나라 대학의 많은 교수들은 기업이 노동비용을 절약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정당한 경영 방식이라고 가르친다. “미국에서는 논문에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등장하면 구시대의 산물로 간주하고 읽지도 않는다”는 유의 주장을 선진적 지식이라고 배운 학생들이 언론인이 되고 기업 경영진이 되면 기업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침탈하는 경영 방식이 사회에 유익한 것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모성보호법 등의 제·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기업 경영자들은 그 전제조건으로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했다. 그 주장들은 생리휴가 제도가 여성을 육체적으로 취약한 존재로 간주해 오히려 차별한다든가, 여성을 ‘아기 낳는 도구’로 취급함으로써 여성 비하에 해당한다는 외피를 입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 쉬면서 받는 임금만큼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근대적 경영관이 초래한 발상에 불과했다.
2003년 ‘주 5일 근무제(주 40시간 노동제)’가 도입되면서 경영계는 또다시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했고 많은 논란 끝에 유급이었던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바꾸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유급생리휴가’가 그냥 ‘생리휴가’로 바뀐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여성 노동자들은 생리휴가로 쉬려면 그날의 임금을 포기해야만 한다.
당시 경영계가 생리휴가 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내세운 주요한 논리들 중 하나는 “선진국들에는 생리휴가 제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진국들이 생리휴가를 특별히 제도화하지 않은 이유는 노동자가 몸이 불편할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 있고 그것이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의 생리휴가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하는 것이 어느 담론에서나 진보의 방향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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