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땅을 밟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으며 활력도 커졌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띄는 게 휴대전화와 자동차다. 5년 전 10만명 수준이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지난해 말 24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보기 드물었던 택시도 평양에만 수천대가 운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본요금은 2달러다. 시장환율이 1달러당 8천원 선이고 보통 사람의 월 임금이 많아도 수천원을 넘지 않음을 생각하면 누가 이 택시를 타는지 궁금해진다. 하루 수천원은 써야 하는 놀이시설에도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어쨌든 지금 북쪽에는 일상적으로 이 정도 돈을 쓸 수 있는 계층이 형성돼 있다.
통일·안보 전문가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북쪽 사회의 변화를 ‘5엠(M)’으로 요약한다. 시장(market) 돈(money) 자동차(motor car) 휴대전화(mobile phone) 의식변화(mind set)가 그것이다. 변화의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2009년 2차 핵실험과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이다. 북-중 관계가 실용주의적으로 바뀌고 젊은 권력자가 등장하면서 변화의 동력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금 모습은 5엠에 중산층(middle class)을 더해 6엠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시장화’라고 표현하면서도 단서를 단다.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개혁·개방이 아니라 계획경제의 한계에 부닥친 국가가 몇몇 권한을 소단위와 개인에 위임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제도와 시장, 국가와 개인 사이에는 단절이 있다. 예를 들어 민간에는 많은 돈이 돌고 있지만 공식 금융기구로 흡수돼 재투자되는지는 의문이다. 관에 빼앗길까 봐 두려운 사람들이 땅속에 돈을 묻어둔다는 말도 들린다.
북한의 앞날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북한붕괴론이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외부인이 기억하는 ‘고난의 행군’은 과거 얘기다. 국제사회의 봉쇄가 계속되더라도 북한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북한붕괴론 또한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북한의 시장화 현상이 경제성장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패의 구조화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할 때, 이는 또 다른 버전의 북한붕괴론을 전제로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붕괴론은 대북정책과 통일방안에도 반영되기 마련이다. 북쪽 체제가 곧 스스로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흡수통일 쪽으로 쏠리기가 쉽다. 일상적 대북정책에서도 소극적 상황 관리에 치중하게 된다. 임기 중반 이후 이명박 정부가 그랬고 박근혜 정부도 비슷해지고 있다. 이런 태도는 한반도 관련 사안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통일 기반을 갉아먹으며 나아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
남북관계 개선의 골든타임으로 불렸던 1~2월을 그냥 넘겨버린 지금 상황이 바로 그렇다. 곧 한-미 합동 키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이 시작되면 적어도 4월까지는 한반도 긴장이 높아질 것이다. 북한과 같은 극장국가의 속성상 한-미 훈련에 맞대응을 하지 않으면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 이미 각종 미사일과 방사포 등으로 저강도 도발을 시작한 상태다. 대규모 한-미 훈련은 여름에 또 있다. 마냥 기다려서는 남북관계를 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권 3년차는 중요한 시기다. 이때 흐름이 대개 남은 임기 동안 관철된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과 미국이 거칠게 맞서는 상황에서도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반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전례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로 인한 파장은 아직도 작지 않다.
북쪽 사회가 바뀌고 있다면 그 변화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할 일이 아니다. 잘되도록 도와줌으로써 통일 기반을 넓히는 게 더 나은 접근이다. 핵·미사일 등 안보 사안을 풀 수 있는 여지도 그래야 커진다. 북쪽이 남쪽을 믿게 되는 것 자체가 안보이고 통일이다. 박 대통령은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부끄러운 회고록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집권 3년차는 위기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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