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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인섭 칼럼] 서울구치소 동창생

등록 2015-02-15 18:48수정 2015-02-16 10:38

원세훈 전 국정원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상득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상득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국정원장으로 위세를 떨쳤던 원세훈씨가 또 구속되었다. 국정원장을 그만두자마자 억대의 뇌물을 받은 사실이 포착되어 1년2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지 5개월 만에 다시 서울구치소로 복귀했다. 이번 건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정치개입을 지시하고, 대통령 선거에 불법개입했다는 것이니 개인비리가 아니라 국기문란 차원의 중범죄다. 실형 3년을 그대로 채운다고 보면 모두 합쳐 4년2개월에 이른다. 국정원장 재직과 같은 기간을 옥살이로 채워야 하는 얄궂은 처지다.

5년 전에 이런 비운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는 국정원을 장악하자마자 본령의 업무보다는 시민사회를 옥죄고 국내정치 개입에 열중했다. 그로부터 핍박받은 당시 박원순 희망제작소 대표는 “이렇게 민간인 사찰, 정치개입을 노골화하면 국정원장은 다음 정권 때 구속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경고했다. 그 경고에 대해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2억원의 손해배상소송으로 괴롭혔다. 반대세력을 탄압하고 위축시키는 성과에 도취했음인가. 이후 법적 경계를 마음껏 넘어서, 정예요원들을 댓글조작 같은 일에 투입하고 국정원을 대선개입 공작에 동원했다. 고삐 풀린 권력은 결국 국정원장 스스로를 ‘셀프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어디 원세훈씨뿐이겠는가. 이명박 정부 때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힌 권력자들은 3년이 못 되어 모두 서울구치소로 갔다. 만사형통의 형님도, 언론 위에 군림했던 방통대군도, 장관과 총리를 능가하는 실세였던 왕차관도 모두 옥살이를 했다. 엠비 정부의 4대 실세가 서울구치소의 동창생이 되었다.

박원순의 경고가 무슨 예언처럼 들리지만, 실은 우리 현대사의 상식이기도 하다. 최근의 역사에 그런 비극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힐수록 몇 년 뒤엔 서울구치소행이었다. 옥살이의 기간과 횟수를 보면 그가 재임 때 얼마나 실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권력의 향유는 순간이고, 길어도 5년을 못 넘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 아니라 권불3~5년도 못 되는 시대다. 굴욕의 옥살이를 예감하면서도 권세를 불법적으로 휘두르는 까닭은 뭘까. 아마도 권력은 순간을 영원으로 착각하게 하는 마취제인 것 같다. 주위에 쓴소리는 사라지고 달콤한 언사만 듣게 된다. 자기 앞에 굽실거리는 사정당국자들을 대하노라면 별 무서워할 근거도 없다. 나만은 예외라는 생각이 오만함을 부추긴다. 나만은 잡혀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일반 잡범뿐 아니라 권력실세들에게도 확고한 것이다.

최시중씨가 직원회의 때 강조했다는 노자의 명구가 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그 눈이 성긴 것 같아도 빠뜨림이 없다. 참으로 허술한 것 같은 하늘의 그물인 것 같은데, 길게 보니 이를 피해 갈 수 없음이 누누이 실증되었다. 정 의심스러우면 서울구치소 수용자 명단을 보면 될 일이다.

누가 3년 후에 서울구치소 동창생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현 정부의 실세 중 일부가 거기 있을 것은 틀림없다. 지금 세도가 집결되어 있는 실세 중의 실세일수록 거기 갈 확률이 높다. 내부감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수록 3년 뒤엔 더 많은 인원이 그 동창생이 될 것이다.

예측의 지표도 예시할 수 있다. 현재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히는 자가 있는가. 누구를 통하면 최고라고들 하는가. 사정당국의 화살이 알아서 피해 가는 자가 누구인가. 혹은 권력층 사칭 사기꾼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요즘 누구를 사칭하여 돈을 버시나요 하고.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앞으로 그런 험한 처지에 놓이지 않으려면 오로지 공직자의 본령에 충실할 일이다. 공직자의 직무는 혼자 독점할 게 아니라 나누어야 할 직분(職分)이고, 책임과 의무의 기초 위에서 하는 책무(責務)인 것이며,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행사되어야 할 권한(權限)일 뿐이다. 직책을 권력(權力)으로 여기는 순간, 그 권력은 권력남용으로 치달으며, 그 결과는 몇 년 뒤 서울구치소행이다. 그러니 높을수록 스스로를 낮출 일이며, 매사에 삼가고 삼가라[欽欽].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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