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제4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면서 2020년까지의 5년은 우리나라 인구위기 대응의 ‘골든 타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6년 이후부터 작년까지 123조원의 예산이 들어갔지만, 출산율은 1.19명 선에 머물렀다. 700여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가 65살이 되는 2020년 한국 노인 비율은 선진국을 따라잡고 2050년에는 선진국은 25% 선을 유지하지만 한국은 37%에 육박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대가 끊기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지시대로 3차 기본계획을 “출산장려, 고령자복지 정책 수준을 넘어 사회경제 전반의 시스템과 인프라를 바꾸는 폭넓은 관점”으로 마무리할 수만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날 발표에서는 그 ‘폭넓은 관점’이 담겨 있지 않아서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연결’해서 풀어야 하는 세대 문제다. 한국처럼 압축적 경제 성장과 가족주의가 강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인사들처럼 부동산투기와 탈세로 축재한 부모를 두거나, 부모가 집을 마련해주고 손주의 과외비를 줄 정도가 아니라면 ‘버젓하게’ 아이를 키워내기 힘겹다. 나름 축재에 능하던 부모가 졸지에 ‘하우스푸어’가 된 현실도 자녀의 결혼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승자독식의 지속불가능한 체제, 특히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을 도태시켜온 시스템을 바꾸어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이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라는 대사에 그 자식 세대의 누군가가 토가 나오려 했다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북유럽 국민들이 1·2차 대전의 위기를 겪으며 소득세를 높이는 데 전격 합의하여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냈듯 심각한 인구위기를 겪는 우리는 지금 증세를 통한 체제 변화를 꾀할 ‘골든 타임’을 맞은 것이다. 소득 격차를 줄이고 합리적 증세로 시민수당 제도를 마련하면 고액 과외와 입시지옥, 세대갈등도 사라지고 출산율은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둘째로 기존의 가족규범을 벗어나 새 가족관을 만드는 것이다. 인구위기를 극복한 북유럽의 혼외 출산율은 50~60% 선이다. 자연스럽게 동거하다가 아이를 낳게 되고 구태여 결혼의 굴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청년들의 결정을 존중한 것이다. 1970년대 무료 정관 수술과 함께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인구억제정책의 성공은 사실상 포니 자가용 운전자 옆자리에 앉아 가정의 운전자가 되고자 했던 아내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어머니들로 인해 결혼을 기피하는 자녀들이 늘고 있다는 현실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어머니가 여자친구를 어떻게 휘두를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여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어도 결혼할 생각을 않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적지 않다. 성숙한 개인주의의 제도화를 논할 때가 된 것이다.
셋째, 인구 문제를 숫자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발명가 한명이 수십,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또는 악한 마음을 품은 한명이 수십, 수만명을 일시에 죽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수가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이미 이 나라에 태어난 아이들 한명 한명을 잘 키우면 된다. 인구 30%가 돈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그 외 인구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하는 다종다기한 일을 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는 인식이 시급하다.
이 위원회는 3차연도 계획을 9월까지 지역별 순회토론 등을 통해 ‘5000만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계획’으로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설마 국민에게 중구난방 ‘꼼수’를 주워듣겠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자리는 바로 ‘폭넓은 관점’, 곧 우리가 ‘고성장 저위험 사회’를 지나 ‘저성장 고위험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을 공유하는 자리여야 할 것이다. 우선 위원회의 위원들부터 ‘폭넓은 관점’에 합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 문화인류학자·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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