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한 복지재단이 어린이집 경영권을 넘겨받으며 교사들을 모두 1년 ‘계약직’으로 바꿔버렸다. 재단 인사책임자는 “본래 모두 해고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는 종교재단이어서 특별히 1년 계약직으로 승계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1년 지난 뒤, 6년 동안 일했던 여교사 한 사람만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교사는 계속 출근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교사를 업무방해 혐의로 연행해 갔다.
왜 그 교사만 해고됐을까? 어린이집 운영 비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원장에게 “아이들 과자값으로 장난하는 일이 한번 더 생기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따진 유일한 교사였기 때문이었다.
재단에서는 그 교사의 근무 행적을 낱낱이 조사해, 자질과 인품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찬 수십쪽 자료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졸업장 순서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이사장님이 졸업장을 수여하다가 내빈들 앞에서 망신당하게 만들었다”는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으니 교사는 망설이다가 답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돈을 다 못 낸 아이들이 몇명 있었어요. 그런데 원장님이 담임인 저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아이들 졸업장만 모두 빼 버린 거예요. 아이들은 졸업장 받겠다고 앞에 앉아 있는데… 졸업장이 거기 없을 거라고 제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어요. 그냥 순서대로 줬어요. 그래서 순서가 틀렸던 거예요.” 교사는 설명하다가 목이 메었다.
아이를 야단쳐서 학부모와 갈등을 빚었던 내용도 있었다. 그 일의 자초지종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 아이가 그날 왜 야단을 맞았냐 하면요… 그 아이가 사실은 좀 어떤 아이였나 하면요…” 말을 잇지 못하던 교사는 잠시 뒤 울음이 가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지금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아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건가요? 제가 지금 나 혼자 살겠다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그 아이 흉을 봐야 하는 건가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어요. 나는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었으니까요….”
‘최종진술’ 시간에 그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유치원 선생님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자라면서 그 꿈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었어요. 가정환경 조사서를 적을 때마다 ‘장래 희망’ 칸에는 언제나 ‘유치원 선생님’이라고 적었어요. 제가 벌어서 공부하느라고 좀 늦게 어린이집 교사가 됐지만 정말 행복하게 일했어요. 그런데 그날… 제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잡혀갔거든요. 내가 선생님인데… 저는 빨리 돌아가야 돼요. 보고 싶은 아이들 곁으로 하루빨리 돌려보내 주세요.”
그 선생님은 결국 대성통곡했다. 가끔 어린이집 교사 관련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이 일이 생각난다. 한동안 노동조합이 왜 필요한지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마다 이 사건을 예로 들었다. 자기 직업을 사랑하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혼자 정의로운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우니까 여럿이 모여 서로 도우면서 하라고 만든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이란 사회의 잘못된 점들을 고쳐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 가장 훌륭한 수단 중 하나다. 200년 넘는 세월 동안 그 역할을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경영진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다. 노동조건이 좋아져야 우수한 자질도 요구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그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가장 취약한 나라들 중 하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진주·마산 지역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폐업에 맞선 투쟁도 결국 우리 사회 기업인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갖고 있는 비정상적이고 과도한 혐오감 때문에 빚어진 일들이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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