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기 전 김포공항은 항공기가 꼬리를 물고 착륙할 정도로 붐볐다. 활주로 주변인 서울 강서구 오곡동과 부천 오정구 고강동 주민들은 극심한 소음공해에 시달렸다. 특히 착륙하는 비행기는 바퀴를 내리고 고도를 낮추어 활주로에 접근하기 때문에 건물에 부딪칠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이 동네 어린이들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그릴 때는 꼭 바퀴까지 함께 그렸다고 한다.
정부는 2002년 주민들의 소음피해를 줄이기 위해 활주로 옆에 있던 농경지와 택지 약 100만㎡를 사들였다. 이곳에 27홀 규모의 대중골프장을 조성하기로 했지만 추진은 지지부진했다. 10년쯤 지나자 사람의 손길이 멈춘 줄 알았는지 자연이 공항 담장 밖의 땅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연은 한번도 이곳에서 손을 뗀 적이 없었다. 굴포천이 한강으로 흘러드는 범람원인 이 지역은 적어도 수만년 동안 광대한 한강 하구 습지의 일부였다. 땅속을 파면 나오는 토탄층은 그런 습지의 흔적이다. 농경이 시작되고 한강 개발로 한강 생태계가 급변한 뒤에도 물이 많은 이곳은 논을 위주로 한 농경지로 유지됐다.
농경이 멈추자 묵논(묵정논)에는 벼 대신 부들과 갈대가 자리잡았다. 농업용수를 대던 농수로 덕에 수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도시에서 보기 힘든 생물이 몰려들었다. 여름이면 갈대를 움켜쥐고 시끄럽게 ‘개~개~개~’ 우는 개개비가 번식하고 백로, 해오라기, 도요, 물닭은 물론 꾀꼬리, 뜸부기, 오색딱따구리 같은 새들도 보인다. 웅덩이와 수로에는 맹꽁이와 금개구리, 수원청개구리 같은 멸종위기종이 번식한다. 습지 주변인 부천시 대장동 마을은 100여마리의 제비가 찾아와 처마에 둥지를 트는 ‘도심 속 농촌’이 됐다. 지난해엔 ‘금가재거미’란 세계적인 신종 거미를 한 고등학생이 이 습지에서 발견하기도 했다.
겨울에도 황조롱이, 쇠부엉이 등 맹금류와 함께 황새가 찾아오기도 해 생태계가 살아 있음을 실감케 한다. 습지 부근 농경지에는 큰기러기,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등 천연기념물이 종종 들른다.
그러나 도심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자연은 곧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사업자를 선정한 데 이어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공람하는 등 올 들어 골프장 건설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사업 목적으론 지역경제 활성화 등과 함께 조류 충돌 위험 완화를 들었다. 내년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부실한 평가가 또 문제가 되겠지만 주요한 논란거리는 아무래도 안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항공 안전을 위해 공항 활주로와 인접한 습지를 없애고 골프장을 만드는 것이 옳은 선택인가. 국토부는 골프장은 안전하고 습지는 위험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농무부가 2005년 내놓은 ‘공항에서의 야생동물 위험 관리 매뉴얼’을 보면 골프장은 습지와 마찬가지로 위험을 줄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설이다. “골프장의 넓은 초지와 연못이 기러기, 오리, 갈매기 등 위험을 초래할 야생동물을 끌어들인다”는 이유에서다. 이 매뉴얼은 또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데 가까이에 습지가 있는, 김포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야생동물 당국과 협의해 위험을 평가하고 최소화하는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습지를 없애라는 문구는 매뉴얼 어디에도 없다.
세계의 많은 공항 주변에 습지가 있다. 그렇다고 안전을 위해 습지를 메웠다는 얘기는 없다. 위험이 있지만 줄여 가면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항은 그런 예다. 공항에 인접해 연못 11개가 4㎞ 거리로 이어진 김포습지 절반 규모의 습지가 있다. 생태적으로 중요해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 습지 보전에 공항이 적극 나서고 있다.
김포 습지는 법정보호종만 30여종이 발견된 보전가치가 큰 곳이다. 습지가 전체 면적의 0.3%밖에 없는 서울에선 뜻밖의 보물이다. 이곳을 보전하면서도 자연을 배우고 즐기는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지혜를 짜낼 수는 없을까. 그쪽이 일부 사람들의 놀이터로 쓰는 것보다 나아 보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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