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네덜란드 출신으로 영국에 정착했던 버나드 맨더빌은 외국인이었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로 영어를 잘 구사했다. 저명한 의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술에 관한 논고를 쓰며 의사로서 존경받는 삶을 산 그를 오늘날 우리는 <꿀벌의 우화>라는 시를 쓴 문학자로 기억한다. 개인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그것을 공익으로 바꾼다고 하는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경제 이론의 원형이 여기에 있음은 스미스 자신도 인정하고 있다.
벌떼가 붐비며 살아가는 벌집이 있다. 벌들은 “폭군의 노예가 아니라/ 법에 권력을 제한받기에/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왕의 노예”이다. 약간 타락했지만 번창하는 그 벌집의 벌들이 미덕을 잃었음을 불평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정직으로 가득 찬 벌집에서 살게 된다. 사치와 타락을 잃고 절제와 근면을 찾았으나, 번영 역시 사라진다. “벌거벗은 미덕은 국가가/ 영광 속에 살게 하지 않으리니./ 황금시대를 부활시키려는 자들은/ 정직을 위해서만큼 이익에도/ 자유로워야 하는 법.”
출간 이래 이 시는 냉소적이고 저급하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아마도 맨더빌에게 가해진 낙인은 국정을 운영하는 자들의 위선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미덕이란 자연적 충동에 반대되는 것으로,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자신의 충동적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 자체는 고귀하고 저급한 것으로 대분할 수 없는 것이나, 지배자들이 통치를 위해 그렇게 나눴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덕성을 주입시킨다는 것은 역으로 사악한 욕망이 그들에게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맨더빌은 그러한 욕망이 교육받고 부유한 계층에겐 교묘하게 숨겨져 있음을 밝히며 빈자 역시 욕망을 추구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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