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아파트 경비원에게 법정 최저임금을 주느니 감원하겠다는 곳이 적지 않다. 가구별로 추가로 내야 할 월 몇천원이 부담스럽다는 서민아파트도 있다. 반대로 전기를 아껴 경비원 임금을 19% 올려주고 고용도 보장해 주는 곳도 있다.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석관두산아파트가 그곳이다. 이 아파트는 입주민의 조그만 노력으로도 대규모 절전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평균 면적 108㎡(33평)에 약 2000가구가 사는 이 아파트는 2010년부터 에너지 절약을 시작했다. 올해까지 4년 동안 줄인 전력 소비량은 200만㎾시에 이른다. 2010년 15억2000만원을 내던 전기요금이 올해는 11억2000만원으로 4억원 줄었다. 그사이 전기요금 인상분을 고려하면 실제 절감액은 5억2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가구당 연간 26만원의 전기료를 아낀 셈이다.
특히 공용전기 사용량은 300만㎾시에서 190만㎾시로 37%나 줄었다. 그 핵심은 바로 지하주차장 조명등 교체였다. 지하 3개 층에 40W 형광등 1450개가 하루 24시간 365일 켜져 있었다. 이를 20W 엘이디(LED) 조명으로 바꾸고, 다시 이용하지 않을 때는 5W로 소비전력이 주는 감지기를 설치했다. 1억4000만원의 투자금은 2년 만에 회수했고, 무려 45만㎾시의 전력소비를 줄였다. 공용전기 소비가 뚝 떨어지자 주택용과 따로 맺었던 한전과의 계약방식을 단일계약으로 바꾸어 요금을 또 절약했다.
이 아파트는 요즘 공영전기의 곱절에 이르는 가구별 전기 소비를 매달 몇만㎾시씩 줄여나가고 있다. 심재철 입주자대표회장이 밝힌 비결은 이렇다. “사람들에게 불편을 강요하고 잔소리를 퍼부었자 지속적인 절약을 이끌지 못합니다. 가장 쉽게 큰 효과가 날 절전 분야에 집중합니다.” 천체관측 동호인이기도 한 심씨는 이를 ‘미스터 갈릴레오의 3+1 절전운동’이라 불러 보급했다. 텔레비전과 냉장고의 설정을 절전 모드로 바꾸는 것만으로 20~40%의 전기를 아낄 수 있고 스탠드형 에어컨의 누전차단기 스위치를 내리는 것만으로도 월 3㎾시를 절약한다. 여기에 외출하거나 잠자기 전 인터넷 관련 전원을 모두 끄는 실천을 하나 하자는 것이다.
석관 두산아파트는 녹색연합이 2012년부터 성북구와 함께 벌이고 있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서 첫 ‘절전소’로 지정됐다. 절전소란 ‘에너지를 절약하는 발전소’란 뜻이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하지도 않으면서 새로 발전소를 짓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다. 성북구에는 아파트, 주민센터, 학교 등 44곳의 절전소가 있다.
요즘 에너지 절약은 서울의 많은 아파트단지에서 화두가 됐다. 석관두산아파트는 7월 서울시의 에너지절약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26개 아파트의 하나이다. 지난겨울 넉 달 동안 이 대회에 참여한 203개 아파트 단지가 에너지 절약으로 아낀 돈은 139억원에 이른다. 대회에 참여한 13만6000여가구가 절약한 전력은 서울 지역 3000여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다. 이들은 정부의 각종 지원제도를 활용해 소형 열병합발전기를 설치하거나 고효율 엘이디 조명으로 교체해 큰 절전 효과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도 생기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50명, 올해 95명의 ‘에너지 설계사’를 선발해 에너지 낭비 현장을 찾아 컨설팅을 해 주고 있다. 계약이 끝난 설계사 가운데 43명이 관련 기업에 취직했고 3명은 에너지 분야 협동조합을 차렸다. 아파트 주민들이 절전의 짭짤한 효과를 맛보게 한 효자인 엘이디는 2011년 20만개에서 올 6월 현재 679만개가 보급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에 이처럼 에너지 절약 열풍이 불게 된 것은 올해 2단계에 접어든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 덕분이다. 밑에서 시작되고 있는 이런 움직임은 큰 의미를 지닌다. 수요를 과다하게 예측한 뒤 원전과 화석연료에 기댄 공급을 늘려가는 중앙정부의 시대착오적 에너지정책이 아파트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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