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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남북관계가 ‘환동해시대’ 가로막아서야

등록 2014-11-26 18:39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지난 18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북한인권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계기로 북한 인권 문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그에 못잖게 주목되는 움직임이 있다.

하나는 부쩍 강해지는 북-러 관계다. 10월부터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권력 2인자로 꼽히는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잇달아 러시아를 방문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먼저 정상회담을 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 5월 소련 시절 북한 채무를 모두 탕감하는 조처를 취했다. 냉전 종식 이후 북-러 관계가 이렇게 긴밀했던 적은 없다.

다른 하나는 지금 진행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 시범운송 사업’이다. 러시아 서시베리아의 광산에서 캔 유연탄 4만500톤(400만달러어치)이 철도로 연해주 하산을 거쳐 북한 나진항으로 옮겨졌다. 나진~하산의 54㎞ 철도와 나진항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최근 개·보수를 마쳤다. 석탄은 중국 배로 29일 밤 경북 포항에 도착해 포스코에 건네진다. 포스코가 지급한 돈은 나선콘트란스에 가고 북한도 5~10%를 갖게 된다. 나선콘트란스는 북한과 러시아가 3 대 7의 비율로 출자한 프로젝트 시행사다. 우리나라는 이 회사 러시아 지분의 절반가량을 사들이려 한다.

두 사안을 포괄하는 개념이 있다. ‘환동해시대’가 그것이다. 두 사안 자체가 환동해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상징한다.

환동해시대의 배경에는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있다. 러시아는 극동지역 개발과 동북아 나라들과의 협력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추진한다. 자원의존적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산업을 다변화하려는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다. 태평양으로 나가는 부동항을 확보하는 것은 러시아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 북한한테 러시아는 새 대안이다. 남북 경협은 개성공단밖에 남지 않았고 중국과의 경협도 생각대로 진척되지 않는다. 나선콘트란스의 러시아 지분을 70%까지 허용한 것은 북한의 취약성과 절실함을 함께 보여준다.

더 중요한 배경은 중국이다. 중국이 2000년대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한 동북3성(요령·길림·흑룡강성) 및 창지투(장춘·길림·두만강지역) 개발 계획은 물류 인프라 구축과 동해 쪽 출구의 필요성을 크게 높였다. 극동지역 자원 개발과 중-러 에너지 협력도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동북3성은 물류난이 심각하다. 중국 남부로 물자를 옮기는 것도 기존 육로보다 동해를 통하는 게 훨씬 낫다.

동해 수송로가 열리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대륙으로 향하는 물류도 늘어나게 된다. 이미 성숙기에 접어든 황해시대를 대체하는 환동해시대의 개화다. 게다가 기후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북극해를 지나는 북극항로가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기존 항로(2만100㎞)는 24일이 걸리지만 동해를 거쳐 북극항로(1만2700㎞)로 가면 14일이면 된다.

환동해시대를 위한 각국의 물적·정책적 여건은 이미 상당히 갖춰져 있다. 북쪽인 중국·러시아·북한의 동력은 아주 강하다.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일본 중심의 남쪽 동력이 커진다면 동해는 유럽의 지중해와 같은 바다가 된다. 이미 환동해 다섯 나라의 국내총생산을 합치면 미국이나 유럽연합을 뛰어넘는다. 현재 진행되거나 논의되는 환동해시대 관련 사업은 교통, 에너지, 관광 분야가 중심이지만 앞으로는 요충지의 관련 산업 발전 등으로 확산될 것이다. 강원도와 경상도의 동해 쪽 지역이 새롭게 각광받을 수 있다.

지금 가장 큰 난관은 남북 관계다.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고 북쪽은 남쪽을 믿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북한에 대한 중국·러시아의 입김만 커진다. 중국 사람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의 집권 이후 남북 관계가 단절되면서 사실상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그들의 시각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보듯이 5·24조처는 이미 타당성을 잃었다. 남북 관계가 환동해시대의 걸림돌이 되도록 방치하는 게 올바른 선택이 될 수는 없다.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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