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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탈북자 신동혁과 북한의 진실 공방 / 김보근

등록 2014-11-09 18:39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적대적 관계에 있는 나라 사이에서 실체적 진실은 어떻게 입증될 수 있을까.’

북한이 지난 10월 말 <우리민족티브이>에 공개한 19분짜리 동영상 ‘거짓과 진실’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동영상에서는 대표적인 탈북 인권운동가 신동혁씨의 아버지 신경섭(70)씨 등이 나서 신씨의 북한 인권 관련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상 속의 인물이 아버지가 맞다”면서도 “독재자가 어떤 행동을 해도 내 눈과 입을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이런 사실에 대해 신씨의 페이스북 내용을 중심으로 보도했다. 또 ‘거짓과 진실’에서 주장된 내용은 소개하지 않은 채 “북한이 가족마저도 탈북자 협박에 이용하고 있다”고 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적대 관계’의 측면이 있다 해도, 이런 보도 양태가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태도였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북의 인권 실태는 실로 열악하다. 북한 인권운동은 그래서 정당성이 있다. 최근 유엔 북한대표부 관계자가 한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실사도 가능하다”고 밝힌 것도, 유엔 표결 등을 앞두고 북한 인권운동이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북의 변화를 이끌어낸 측면이 크다.

하지만 북한 인권운동 진영이나 국내 언론들도 일부 탈북자들이 밝힌 북한 인권 관련 증언의 정밀성에 대해 이제 한번 따져봐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북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라 해도, 만일 북의 인권 상황을 의도적으로 과장한 증언들이 섞여 있다면, 북한 인권운동의 설득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신동혁씨는 세계적인 탈북 인권운동가다.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 블레인 하든이 그의 증언을 토대로 저술한 <14호 수용소 탈출>은 세계 24개국에 번역됐다. 그의 증언은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출범에도 커다란 영향을 줬다. 증언의 핵심 내용은 그가 ‘14호 수용소’로 알려진 평안남도 개천수용소에서 태어나 극악한 인권 상황에서 2005년 탈북 이전까지 생활했다는 것이다. 그의 부모는 모범 재소자에게 주는 상인 ‘표창결혼’을 했다고 한다. 또 수용소 안에서 그는 어머니와 친형의 탈출 계획을 밀고했고, 그 결과 두 사람은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처형됐다고 했다. 그 자신도 재봉틀을 떨어뜨린 죄로 손가락이 잘리는 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과 진실’에서 아버지 신씨는 그의 유치원 때 사진을 제시하며 그의 출생지는 개천이 아니라 평남도 북창군 석산리라고 주장했다. 또 이웃 주민 송경란씨는 신씨의 어머니와 형이 처형된 것은 그 둘이 김춘애라는 여성을 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창군 봉창리 탄광에서 신동혁씨와 함께 일했다는 리봉은씨는 그의 손가락은 밤에 길을 가다 돌밭에 넘어져 골절이 된 뒤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주민 윤영옥씨는 신씨가 2001년 당시 13살인 자신의 딸을 강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주장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다. 신씨의 주장이 진실인데 북한이 인권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많은 주민을 동원해 거짓말을 하게 한 것이라면, 이번 일은 북한의 그 어떤 인권 침해보다 더욱 크게 비판받을 것이다. 하지만 신씨의 주장에 과장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북한 인권운동 진영도 지금까지 쌓아왔던 도덕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 같다.

그 진실 공방의 끝은 어디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커다란 ‘적대의 벽’을 넘을 수 있을 때에만 그 실체적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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