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통상 해적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바다에서 상대를 불문하고 약탈이나 납치를 일삼아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던 그 해적 말이다. 그렇지만 그의 경력을 상세히 살피면 그는 반드시 불법적인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그 길에 나섰던 것도, 그의 행적이 해적질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영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에스파냐에서 특히 그를 두려워해 ‘엘 드라케’, 즉 무시무시한 ‘용’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그는 절대주의 시대 영국의 국가적 영웅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항해에 재능을 보인 그는 멕시코에서 에스파냐 함대에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이후 에스파냐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그는 북미 대륙 여러 곳에 산재한 에스파냐 식민지 요충을 급습해 약탈했을 뿐 아니라, 페루의 광산에서 캐낸 금은을 에스파냐로 싣고 가는 배를 카리브 해에서 습격했다. 당시 그 바다를 ‘스패니시 메인’이라 부를 정도였으니, 에스파냐의 영향력이 막강한 바로 그곳에서 그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의 무훈(?)을 남달리 여겼던 모양이다.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해를 지원해 위신이 높아진 에스파냐를 부러워하던 참이라, 영국도 그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도록 드레이크에게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를 명했다. 드레이크는 온갖 난관과 위험을 무릅쓰고 위업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항해 중에 빼앗은 보화까지 나라에 바쳤다. 영국과 결혼했다며 독신을 지킨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에게 훈장과 작위로 보답했다. 이후 드레이크는 영국을 침공한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를 격파함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능력이 있고 명예를 알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사회적 의무를 실천한 드레이크에게 귀족 칭호를 내리고 작위를 수여한 여왕의 결정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정작 문제는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국민을 수탈하고 겁박하는 해적들이 도처에서 지도층으로 부상하는 이곳의 현실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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