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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영화 ‘카트’의 투명인간

등록 2014-11-04 18:53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노동자들이 510일 동안이나 벌였던 파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카트>는 ‘배우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사실에 충실했다. 탈의실에 붙어 있는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문구는 실제 한 마트회사의 캠페인 구호이고, 계단 아래 비좁은 공간에서 청소노동자들이 밥을 먹는 장면도 서울 소재 대학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직원도 마음대로 못 자르면 그게 회사야?”라는 관리자의 말은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시절 쉽게 엿볼 수 있는 사용자들의 생각이었다. 우리 주변에 늘 존재했지만 영화에 담기기 전까지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영화가 갖는 힘이다.

실제 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도 많았다. 식당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이 처음 가입원서를 써내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손님들로 가득 찬 넓은 식당 한 귀퉁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대여섯명의 마트 노동자들이 주눅 든 시선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런 작은 모임들이 여러번 되풀이된 뒤에야 많은 노동자들이 모이는 일이 비로소 가능했다.

영화의 주인공 선희(염정아 분)는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지 마라!”고 외친다. 그런데 영화 <카트>에는 정말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나 활동가들이 없었다면 510일 동안의 파업은 물론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했거나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를 잘못 만들었다고 나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카트>는 짧은 상영 시간 안에 2년 동안의 투쟁을 잘 담은 훌륭한 영화이고 우리 사회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획 자체가 용기 있는 시도였다.

영화 속에서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투명인간처럼 철저히 감춰져 있다. 노동자들의 손에 가입원서 한 장이 들려지기까지에는 또 하나의 영화가 필요했을 만큼 활동가들의 숱한 노력들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 사연들 중 일부를 최규석 작가의 웹툰(인터넷 만화) <송곳>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만일 민주노총의 역할이 영화 <카트> 곳곳에 구체적으로 묘사됐다면 어떠했을까? 영화를 보며 반감을 느끼는 관객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슬픈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46일이나 단식을 했을 때도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것을 이유로 ‘골수노조원’이 ‘노조’를 ‘배후’에 두고 ‘정치적 의도’로 단식을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순수한 유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남짓이다. 직장인 열명 중에 한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으니 노동조합 활동이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다. 북유럽 나라들처럼 노동조합 조직률이 80%에 이르거나 스웨덴처럼 실직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어 통계 방식에 따라 노조 조직률이 100%를 넘기도 하는 사회였다면 어떠했을까? 조합비를 한푼도 내지 않은 채 혜택을 받는 비노조원이라는 것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은 12명의 핵심 활동가들이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510일간의 파업을 끝냈다. 다른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복직과 고용보장 및 정규직과의 차별을 실질적으로 없애는 합의를 하면서 자신들의 복직을 포기한 노동자들은 정규직 조합원들이었다. 지난주 방송에서 만난 노동자 박성락씨 역시 현대자동차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하다가 해고된 정규직 노조 간부였다. 그렇게 힘겹게 싸우며 10% 노조 조직률을 지키고 있는데, 노조 조직원이라는 것 자체가 특권적 지위가 되었음을 뜻하고 노조원이면 대한민국 10%에 속한다는 분석이 진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우리 사회다. 문제는 그러한 분석에 통쾌해하며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아니라 투명인간들이 사회를 바꾼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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