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산림녹화 성공담이 정부 고위층의 입에 자주 오른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17일 폐막한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의 고위급회의 기조연설에서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산림녹화에 성공한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개도국의 산림 생태계 복원을 지원하는 제안을 했다. 앞서 9월 박근혜 대통령도 뉴욕 기후정상회의에서 “한때 벌거벗은 붉은 산이었던 전 국토가 푸르러져서 산림 복원의 성공 국가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국제기구들도 인정하는 성공 사례이다. 기후변화를 억제하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려면 숲을 늘려야 한다. 개도국에 이런 녹화의 비결을 전수하는 건 타당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산림녹화 사업이 사실상 끝난 지 30년이 다 된 마당에 공영방송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지도자들이 앞다퉈 산림녹화를 말하는 이유는 뭘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배경에 어른거린다.
박 전 대통령의 산림녹화에 대한 열정과 강력한 지도력은 거의 신화가 됐다. 그의 기여를 부정할 수는 없다. 1967년 산림청을 설립한 뒤 1973년 시작한 제1차 치산녹화 10년 계획은 30억그루 가까운 나무를 심은 뒤 1978년 목표를 4년 앞당겨 달성하고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 방면의 ‘원조’는 아무래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1946년 4월5일을 식목일로 지정한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나무를 아무리 많이 심어도 다 베어 쓰면 소용없음을 깨닫고 연료를 목재에서 무연탄으로 바꾸는 핵심적 정책을 시작했다.
이승만 정부의 석탄과장이던 정인욱은 대통령한테 불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당장 땔감 없어 밥도 못 지어먹을 형편인 국민들에게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말이오. … 지금 우리가 석탄 열심히 캐지 않으면 어느 세월에 산에 나무가 우거지겠소. 내가 어떻게 하든 식량은 미국에서 끌어다 댈 테니 당신은 땔감 문제를 책임지시오.”(배재수 외, <한국의 산림녹화 성공 요인>)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나무 땔감이 차지하던 비중이 1950년대 90%를 웃돌다가 1990년대 1% 이하로 떨어진 통계가 연료 전환 정책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물론 땔나무에서 석탄, 석유, 도시가스로 연료를 바꿔나갈 수 있었던 것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집중했고 지속적으로 경제가 성장해 연료를 바꿀 만큼 소득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때 국내 목재 수요를 충당하고 경제성장의 효자 구실을 한 것이 동남아 열대림의 원목이었다. 산림녹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합판 수출국이었다. 원목 수입국은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를 거쳐 1970년대에는 인도네시아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절정기였던 1978년 이 나라 원목 516만㎥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성공 뒤에는 동남아 열대림의 훼손이 있었던 것이다.
생물다양성 보전에도 선진국과 개도국의 이해는 충돌한다. 강원도 평창에서 지난 3주 동안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도 그랬다. 유전자원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뜻을 실천할 나고야 의정서가 이번 총회 기간 동안 발효했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개도국은 환영했지만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선진국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평창 로드맵’ 이행에 필요한 재원 마련에도 끝까지 합의를 얻지 못했다.
이제 더는 열대 원목을 수입하지 않지만 의약품, 식품, 화장품 등 우리는 여전히 개도국의 생물다양성에 의존해 살아간다. 예컨대 라면, 비누, 초콜릿, 커피믹스 등에 들어가는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단일재배 농장으로 바뀌는 열대우림의 면적은 인도네시아 등에서 매초 축구장 면적 2개꼴이다. 선진국의 생물다양성은 10% 늘어났지만 저소득 국가에선 58% 감소했다고 세계자연기금(WWF)이 최근 밝혔다. 선진국이 자국의 자연은 보전하면서 자원 수입국가에 그 부담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생물다양성 보전에서도 개도국에 대한 지원은 시혜가 아니라 정의와 공평함을 위한 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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