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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만장: ‘내릴 수 없는 깃발’ / 이창곤

등록 2014-10-12 18:44수정 2014-10-13 17:47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11일 오전 서울광장, 지난 8일 타계한 고인의 뜻을 새긴 10여개의 만장이 바닥에 누워 있다.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내릴 수 없는 깃발’이다. ‘깃발’을 들자 도심의 바람이 할퀴듯 달려들어 흔들어댄다. 황급히 만장을 잡은 두 손을 꽉 부여잡는데 어디선가 고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놓칠 수 없고, 내릴 수는 없는 게 ‘우리들의 깃발’이야.”

이날 성유보 선생(1943~2014)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고인의 장례 행렬은 이른 아침, 빈소인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떠나 초대 편집위원장을 지낸 한겨레신문사를 거쳐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다다랐다. 고인은 영결식장에서 수많은 사회운동 동지들의 전송을 받았지만 <동아일보> 옛 사옥 앞에서 이 땅의 언론에 대한 큰 질문을 던지고서야 비로소 되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났다.

선생이 기자로서 첫발을 내디딘 그곳 옛 건물 앞에서 치러진 노제는 시간이 1970년대로 되돌아간 듯했다. 1975년 3월17일, 당시 선생을 비롯한 권근술, 정연주, 김종철 등 이른바 ‘동아투위 기자들’은 독재권력의 편집권 침해에 맞서 “자유언론에 따라 순(殉: 따라 죽음)할 것을 다짐”하며 그 건물 안에서 농성을 벌였다. 구사대의 각목 세례, 이어진 해고와 구속에도 그들은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로부터 39년 뒤인 2014년 10월11일, 이젠 백발 성성한 원로이건만 그들은 언론개혁과 통일을 위해 힘쓰다 이승길 떠나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다시 ‘자유언론’과 ‘언론의 각성’을 외쳐야 했다. 아무리 역사가 ‘자유’와 ‘진리’를 쉬이 허락지 않는다고 해도 수십성상의 고난에도 한국 언론의 일그러진 몰골을 직시해야 하는 이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곱씹어보건대, 민주화 이래 권력에 의한 검열이 사라지고, 신문·방송 등 수많은 매체가 생겼다. 1970년 42개이던 일간지(종이신문) 수는 2012년 기준 140여개에 이른다. 9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을 등에 업고 온라인 매체들이 속속 등장했고, 방송의 경우에도 종합편성채널(종편)에다 팟캐스트 등 지상파를 무색게 하는 미디어들이 차고 넘친다. 그래서 누구는 ‘언론자유가 아니라 지나친 풍요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왜 선생과 원로들은 각목 세례의 시절보다 더 이 땅의 언론 현실을 걱정하고 우려했는가? 왜 ‘자유언론’를 또다시 호명하고 있는가?

그들만의 시대착오적 인식이 아님은 분명하다. 국제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최근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한국 언론의 자유를 197개국 가운데 68위로 평가했다. 2004년 26위에서 곤두박질해온 수치다. 권력의 언론탄압, 힘에 굴종한 방송인, 낙하산 인사, 권언유착 등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우선 살아남아야 하지 않느냐’는 시장논리는 우리 언론을 또다시 굴절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시장논리, 생존논리는 언론자유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같은 언론의 본질적 가치를 한낱 ‘사치’로 치부케 하는 언론사주와 경영진의 신종 무기가 된 지도 오래다.

가히 ‘정글언론의 시대’가 아닐 수가 없다. 실제 언론계의 시장구조는 정론을 지향하는 매체들에도 큰 도전적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지경에도 정작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내부의 성찰적, 혁신적 움직임이 미미하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에 정녕 미래와 희망이 있을까? 고인은 <뉴스타파>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사회문제에 발언하고 참여하는 시민의 힘”이 결국 언론을 포함한 한국 사회를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이란 희망이었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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