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사이버 사찰은 “국론 분열 방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이라고요? 사이버 망명은 “국익 저해 행위”라고요? 기업은 항변을 하네요. “권력을 탓해야지 왜 기업을 탓하느냐”고요. “나약한 인터넷 사업자에게 돌을 던지는 비겁한 중생들”이라고요. 그렇지요. 기업한테는 잘못이 있을 수 없지요. 권력한테도 잘못이 있을 수 없지요. 잘못은 항상 힘없는 국민들 몫이지요. 항상 불순한 세력이 뒤에 숨어 있지요.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지요. 북의 사주를 받고 ‘국민총화’를 해치는 불순한 자들이 있다고. 그러니 오늘 박근혜 대통령께서 종북세력들이 국론을 분열시켜 ‘국민대통합’을 해친다고 하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대통령 모독’을 일삼고 있는 자들은 틀림없이 그런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우매한 국민이겠지요. 그러니 ‘순수한’ 국민으로부터 ‘불순한’ 국민을 갈라내기 위해서도 사이버 사찰은 꼭 필요하지요. 대통령께서는 ‘순수한’ 국민만 상대하셔야 하니까요.
북한은 자기네 ‘최고 존엄’을 모독한다고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까지 발포했다지요. 우리 경찰이 우리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불순세력들을 사이버 사찰 한 게 뭔 대수겠습니까. 총을 쏜 것도 아닌데. 감히 대통령의 사생활 7시간을 언급하다니. 우리 검찰이 우리 ‘최고 존엄’을 모독한 못된 일본 기자를 기소한 것 가지고 떠들 일이 뭐 있습니까. 나라 망신 좀 하면 어떻습니까. ‘최고 존엄’의 명예가 더 중요한걸요.
지금은 좀 시끄럽지만 곧 모든 게 다 잘 마무리되겠지요.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선거개입 사건처럼 하찮은 일만 아니면 우리 법원이 우리 민초들의 카톡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일은 별로 없을 테니까요. 또 카카오는 국가에 충성하는 기업이니 알아서 그 복잡한 카톡 내용을 다 잘 정리해서 경찰에 갖다 바친다지요. 그리고 우리 법원이 어떤 법원입니까. 국정원장이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하지 않았다”고 재기 넘치는 판결을 하는 ‘창조’ 법원이지 않습니까. 이 정부가 ‘창조 경제’는 못해도 ‘창조 법치’는 잘하는 정부 아닙니까. 대통령을 모독하는 못된 짓은 곧 발본색원되겠지요.
그러니 대통령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예정된 외국 순방이나 잘 하고 오십시오. 대통령께서 외국 나가시기만 하면 지지율이 오른다고 하던데 얼마나 좋습니까. 국내의 골치 아픈 일을 잊을 수 있고 지지율도 오르고.
하니 이번에 외국 나갔다 오시면 이젠 대통령께서 좀 국민들에게 너그럽게 대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웃전’이 너그럽게 해주셔야 아랫것들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습니까. 숨통이 막히는데 무슨 창조경제가 되겠습니까. 재벌들한테 지역별로 창조사단 하나씩 떠맡기시는 것 같던데 그러면 창조경제는 망하지요. 작은 영혼들이 자유롭게 숨 쉬면서 막 뛰어놀 수 있어야 창의성이 살고 창조경제가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정치사찰이 무섭지요. 그러니 사이버 망명을 가는 거지요. 저희 같은 민초들만 “비겁한 중생들”이라 사이버 망명 가는 게 아닙니다. 새누리당 국회의원·당직자,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 한번 조사해보세요. 청와대 부하들도 한번 조사해보세요. 벌써 뒤로 몰래 텔레그램에 가입한 사람 많을 겁니다. 겁나기는 그 사람들이 더하니까요. 그 사람들 틀림없이 앞에서는 카톡을 하고 뒤에서는 텔레그램을 할 겁니다.
이대로 가면 카톡은 죽습니다. 대통령께서 창조경제 기업을 죽이시면 되겠습니까? 그건 “국익 저해 행위”입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카톡은 죽는 게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깝기는 하지만 후대에 귀중한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요. 기업이 고객 보호는 안중에 없이 부역을 일삼으면 망할 수도 있다는 교훈 말입니다. 공권력이 표현의 자유, 영혼의 자유를 억압하면 귀중한 우리 창조 기업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교훈 말입니다. 길게 보면 그게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업료 없이 배울 수는 없지요. 그래서 대통령께서도 반값 등록금 약속을 파기하신 거 아닙니까.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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