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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홍섭의 물바람 숲] 덕유산부터 가리왕산까지

등록 2014-09-29 18:2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1997년 전주·무주 겨울철 유니버시아드 개막식 때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무주리조트의 개막식장에 잠입한 30여명의 대학생이 덕유산 환경파괴에 항의하는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이들은 경호실과 안기부 요원들에 의해 즉각 연행됐다. 학생들은 프레스센터에도 기습 진입해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기자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갔다. 사실, 기자들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라고 했지만 덕유산이 참혹하게 망가지는 걸 거의 보도하지 못한 미안함도 작용했을 것이다.

덕유산을 비롯해 발왕산, 함백산, 가리왕산은 스키장 개발로 망가졌거나 허물어지고 있는 중부지방의 고산이다. 이곳에 사는 구상나무, 분비나무, 주목 등 침엽수는 지난 빙하기 때 번창하다가 추운 날씨가 물러간 뒤 높은 산 피난처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이른바 ‘유존종’으로서 세계적 보전가치를 지닌다. 특히 구상나무는 한반도에만 사는 특산 수종으로 학명이 ‘한국 전나무’이다. 하지만 약 100년 전 독일로 건너가 세계적 크리스마스트리가 됐다. 흔히 꼽는 유전자원의 해외 유출 사례이다.

학계에서 그 가치를 잘 알던 이들 고산생태계가 속절없이 훼손된 궤적을 짚어보면, 대통령과 특별법, 그리고 개발에 눈먼 지자체란 열쇳말이 나온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6년 지방순시 때 전북도에 “겨울 올림픽 스키장 개발을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세계 대학생들의 체육대회’인 유니버시아드가 국가적 행사로 추진됐고, 덕유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역사상 최악의 환경파괴를 당했다.

쌍방울개발의 무주리조트는 1992년 대통령선거 때 겨울 올림픽 전북 유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자 덕유산 정상까지 넘보게 된다. 국립공원 한가운데 67만㎡ 면적에 이르는 스키장, 골프장 등 휴양시설을, 그것도 대부분 국유지이고 자연보호구역인 곳에 짓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존 법률을 찍어누르는 특별법이 그 비법이었다. 국회는 1995년 12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 여론의 시선이 쏠려 있는 틈을 타 국제경기대회 지원 특별법을 90% 가까운 찬성표로 통과시켰다. 환경부와 환경단체의 반발 속에 여야를 넘어선 지역 출신 의원들이 주도한 이 특별법은 환경영향평가 협의권을 환경부 장관에서 빼앗아 시·도 지사에게 넘겼다. 덕유산과, 동계 아시아대회가 열릴 발왕산 정상까지 스키장을 건설할 길이 뚫렸다.

덕유산의 향적봉(해발 1614m) 정상 가까이 활강 스키장을 건설하면서 구상나무와 전나무 등 희귀 고산식물은 큰 타격을 입었다. 쌍방울 쪽은 “이식하면 90%를 살린다”고 큰소리쳤지만 옮겨 심은 구상나무는 전멸했고 주목은 절반 이상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남들은 환경올림픽 외치는데 우린 천연보호림 뚫고 스키장”, <한겨레>가 1994년 실은 덕유산 환경파괴 기사의 제목은 20년이 지났지만 평창 가리왕산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2012년 제정된 평창동계올림픽 지원 특별법은 사전환경성 검토를 무력화했고, 국립공원보다 더 보전 강도가 높은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을 해제하는 길을 터 주었다.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산지 전용 허가도 떨어졌다. 환경부는 있을 법하지 않은 복원을 전제로 환경영향평가를 해 주었다.

산꼭대기까지 너비 30m, 길이 3000m를 파헤치고, 제설용 관로를 묻고, 흙을 다지고 돋우는 공사를 한 뒤 원시 생태계를 복원하라는 주문이 헛소리로 들렸을까. 강원도는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된다며 버티고 있다. 평창에 2만여명의 전문가가 모이는 생물다양성협약 총회를 한 주일 앞두고 가리왕산의 벌채를 감행하는 두둑한 배짱은 그런 자신감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병천 우이령사람들 대표는 “500년 동안 보전된 원시림을 무단 벌목한 한국 정부나 강원도는 생물다양성을 논의할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덕유산을 망가뜨리고도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하고 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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