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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개혁의 법칙 / 이창곤

등록 2014-09-21 18:23수정 2014-09-21 22:39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세상에서 가장 해내기 어려운 것, 가장 성공이 의심스러운 것, 가장 다루기 위험한 것은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는 일이다.”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개혁의 어려움을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경구, ‘개혁의 법칙’이다. 그렇다면 새 질서의 도입, 개혁은 왜 어렵고, 성공이 의심스럽고, 다루기 위험할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풀이한다.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은 다 개혁가의 적이 되지만, 새 질서로부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그저 미지근한 옹호자가 될 뿐이다.” 개혁의 실패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보다 정작 개혁의 결과로 새로운 기회를 얻거나 수혜를 얻는 이들이 내심 옹호를 하면서도 적극적인 지지를 표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가?

이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반대세력에 대한 두려움”과 “실제로 경험해볼 때까지는 어떤 새로운 것도 믿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마키아벨리는 실상 이 경구를 통해 개혁의 실패가 아닌 성공 요건을 얘기하고 있다. 어떤 지도자나 세력이 개혁과제를 성취하려면 개혁의 옹호자들에게 어떻게 개혁의 결과에 대한 강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가를 가장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옹호자들의 미지근한 마음을 뜨겁게 달구는 정치적 지렛대를 세우지 않고선 개혁을 성공시키기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꼽는 개혁의 성공 요건이란 생각이다. 강한 믿음은 개혁을 어렵게 하는 또다른 요인인 ‘반대세력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거나 낮춰 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줌은 물론이다. 상식적인 얘기 같아도 현실에선 의외로 이런 점을 헤아리지 못해 개혁은 고사하고 스스로 무너지는 사례를 본다.

15~16세기 이탈리아 사상가의 통찰은 지금도 깊이 곱씹을 만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선 옹호자들의 강한 믿음만으로 ‘반개혁의 벽’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반개혁세력이 매우 조직적으로 형성돼 있는데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기 십상이어서 개혁세력 및 옹호자들 안에서도 개혁 강도와 내용에서 온도 차가 다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에서 오늘날에는 마키아벨리의 경구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개혁의 성공 요건은 ‘과정이나 절차에 대한 중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숱한 개혁이 실패로 끝나는 데는 반대세력들의 존재나 대립 때문이 아니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특히 지도자나 일부 세력의 독단은 가장 경계할 반개혁적 요소다. 이는 협상과 합의의 과정을 원천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개혁세력 내부를 분열시키거나 반개혁세력 결집의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지도자나 세력이 뜻한 바를 이루어내지 못한 데는 이념이나 정책, 혹은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보다, 개혁의 속성과 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았다고 본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감혁신’의 실패는 상대 세력, 곧 새누리당 때문이 아니었으며, 당내 기득권 또는 강경세력 때문도 아니었다. 아무리 선의에 따른 결정을 했더라도 믿음을 얻고자 하는 과정을 중시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사회정책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개혁은, 특히 사회개혁은 본질적으로 대립과 갈등, 설득과 타협을 수반하는 정치과정이다. 이 점을 자각한다면 절차와 과정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만 과정보다 더 중요한 건 있다.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라는 질문과 답일 것이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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