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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복지부는 기재부의 외청이 아니다 / 이창곤

등록 2014-08-24 18:31수정 2014-09-01 10:54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42일째 곡기를 끊은 채 죽기를 각오하고 호소하는데도 어찌 그토록 무감할 수 있는가? ‘응답’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애끓는 농성과 각계의 ‘동조단식’이 이어지는데도 어찌 그토록 침묵으로 일관할 수 있는가? 지금 청와대를 향해 한마디 던지라고 한다면 이것이 아닐까. “어찌 이럴 수가 있나?!” 나는 이 질문을 보건복지부에도 똑같이 던지고 싶다. “어찌 이럴 수가 있나.” 한마디 더 덧붙인다. “대체 어디까지 갈 것인가?”

대통령제 아래서 정부 부처로서 청와대의 뜻을 좇지 않을 수 없다고 해도, 또 경제부처의 압력을 외면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도, 정체성마저 잃어선 곤란하다. 적어도 부처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하는 상황엔 찍소리라도 내야 하는 것이며, 어떤 경우라도 정책기조의 마지노선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요즈음 박근혜 정부의 복지부는 최후의 정책방어선마저 내주고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에 그저 끌려가거나 쫓아가는 게 전부다.

이 나라 국민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는 보루여야 할 곳의 모습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기자로서 처음 출입한 1998년 이래 그동안 봐온 복지부의 모습 가운데 가장 딱한 지경이 지금이 아닐까도 싶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인다. 이름하여 ‘서비스산업 투자활성화 대책의 보건의료 부문’을 보자. 세월호 참사를 가져온 원인 중 하나인 규제완화가 보건의료 분야에 해일처럼 밀려올 모양새다. 의료영리화를 부추길 정책들이 가득한데다 이 나라 보건의료전달체계를 뒤흔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해 말 의료법인 영리 자회사 허용, 부대사업 확대, 원격의료 추진 등을 밝히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의사와 보건의료노동자 등 시민들의 반대서명이 150만명을 넘어선데다 초법적 발상이란 비난을 산 정책들이다.

이것도 모자랐나. 이달 12일 청와대 주재로 연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된 대책에는 의료영리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병원의 범위를 더 넓혔다. 국내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를 허용하는 ‘국제의료특별법’도 제정하기로 했다. 복지부가 제주도에 외국 영리병원 1호로 승인을 검토중인 중국 산얼병원의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제 <뉴스타파>의 보도를 보니, 이 병원의 모회사는 사실상 부도 상태이고, 설립자는 지난해 7월 이미 경제사범으로 구속됐다고 한다. 이러니 “투자활성화 정책은 의료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의료비를 폭등케 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더 거세게 나온다. 이처럼 힘있는 곳에 끌려 정체성과 맞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는 복지부의 모습은 비단 보건의료 부문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이러니 기재부의 외청인가, 보건의료산업부인가라는 힐난이 나오는 게 아니겠는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데는 장관의 태도와 잘못이 크다. 문형표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의료법인 산업 육성과 부대사업 확대는 세계화”라고 말했다. 산얼병원 같은 곳을 유치하는 게 설마 세계화는 아닐 것이며 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건강과 안녕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영리병원 도입을 놓고 기재부 장관과 맞짱을 뜬 이명박 정부 때의 전재희 장관을 굳이 상기시키지 않아도 복지 부처의 수장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어선 안 된다. 지난달 초 우리의 복지부 격인 독일 연방의 노동사회부를 찾아 “복지와 노동 등 사회정책은 누가 책임지고 관장합니까?”라고 물었다. 짧은 답변이 되돌아왔다. “그야 당연히 우리가 책임지고 결정하지요.”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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