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통일부의 ‘2014년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의 신청 마감일이 내일(12일)로 다가왔다. 통일부는 ‘드레스덴 선언 관련 실적 쌓기’를 위해 이 사업 추진을 밀어붙이고, 북은 ‘드레스덴 선언을 거부하기 위해’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둘 다 인도적 지원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통일준비위 명단을 발표한 지난 7월15일, 통일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공고를 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진료소·온실·낙농 지원사업에 모두 30억원의 돈을 풀겠다는 내용이다.
조건도 파격적이다. 무엇보다 기존 협력기금 신청 때 필수 요건이었던 북한과의 사업 합의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선정된 뒤 북과 협의해 합의서를 받아오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은 “통일부가 어떻게 하든 드레스덴 선언을 뒷받침하는 ‘실적’을 내려 하는 것”으로 풀이했다.
통일부도 이 사업이 드레스덴 선언과 관련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원 분야가 ‘영유아 질병 치료·예방’, ‘영유아 영양 개선’ 등 드레스덴 선언에서 강조한 영유아 문제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 반응이 신통찮다. 우선, 대북지원 민간단체들로 구성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의 핵심인 10여개 상임위원 단체들이 통일부 공모에 응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이 지원사업이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의 거부감이 크다. 여러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북은 “이번에 기금을 받는 단체와는 앞으로 절대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유는 북이 이 사업을 “드레스덴 선언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남한 국내용 정치쇼’”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북의 이미지를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의 굶주린 모습으로 고착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이 크다”고도 본단다.
북은 자신들의 현재 경제상황이 20년 전 과거와 크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최근 북한 언론들도 “마식령스키장, 문수물놀이장 등이 인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등 ‘식량난’ 때와는 다른 모습을 자주 전한다. 북은 따라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도 이런 변화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은 이와 관련해 최근 만난 대북 엔지오 관계자들에게 ‘축구공 공장 지원’ 등을 요청했다고 한다. 올해 브라질월드컵 등이 중계되면서 북한 내에 축구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받는 쪽에서 원하는 것을 주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북의 주장에 경청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북의 주장도 ‘정치쇼’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는 어렵다. 북한 어린이들의 상황이 완전히 개선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이 여전히 유니세프나 세계보건기구 등으로부터 영유아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 증거다. 그런데도 남쪽의 지원의사를 ‘드레스덴 선언을 거부하기 위해’ 수용하지 않는 것 또한 정치적 행위이다.
어떻게 하면 인도적 지원 문제를 이 정치쇼의 수렁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해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묶어놓은 민간단체들 고유의 지원사업을 다시 풀어주는 것이다. 현재 남쪽 정부가 막고 있는 지원사업들에는 영유아 관련 사업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렇게 되면 북도 드레스덴 선언을 이유로 영유아 지원사업에 대한 지원을 거부할 리 없다. 또 그래야만 비로소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북의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도 조금은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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