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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석구 칼럼] 이로움과 올바름

등록 2014-08-04 18:36수정 2014-08-04 19:58

정석구 편집인
정석구 편집인
중국의 고전 <맹자>는 이로움(利)과 올바름(義)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한다. 맹자를 만난 양나라 혜왕은 “선생께서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에 어떤 이익이 있겠는가”고 묻는다. 하지만 맹자는 “왕은 하필 이익만을 말합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며 면박을 준다. 맹자는 그러면서, 왕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궁리하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궁리하고,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궁리한다고 말한다. 위아래가 서로 이익만을 취하다 보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맹자는 이익보다는 어짊과 올바름을 앞세우는 왕도정치를 추구했지만 그것은 현실세계에선 도달하기 힘든 이상향이었다. 올바름보다 이익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정치다.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제후들이 각축을 벌이던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은 백성들의 경제적 욕망을 충족시켜줌으로써 가장 먼저 패권국가에 올랐다. 제환공의 성공은 다른 제후들이 본받고 싶은 모델이 됐다.

현대정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올바른 정치보다는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가 현실에서 득세해온 게 우리 현대정치사다. 위정자들도 사회 정의보다는 국리민복이란 말을 자연스레 입에 달고 산다.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옳고 그름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우리 정당, 특히 보수정당은 올바름보다는 국민의 이익과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더 관심을 쏟는다. 사실은 그것조차도 주로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긴 하지만. 반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는 식의 인식을 보편화시키면서 정치세계의 옳고 그름에 대한 국민들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7·30 재보선에서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이 한창이다. 보수 언론들까지 나서 야당 재건을 놓고 조언을 하고 있는 판이니 야당 신세가 말이 아니다. 야당이 왜 질 수 없는 선거에서 계속 졌는지에 대한 이유를 들자면 나눠먹기식 공천에다 비전 제시 실패 등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하지만 정작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번 선거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의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냐이다. 선거란 게 궁극적으로는 국민 삶을 향상시키고, 사회 전반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대표자를 뽑는 것인데 과연 이번 선거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는지 의문이다. 무능하고 한심한 야당을 속 시원하게 심판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곧 올바른 정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유권자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외면한 채 누가, 그리고 어떤 정당이 내 삶에 유리한가를 따져 치른 선거였다. 똑같이 무능한데도 여당보다 오히려 야당을 심판한 것은 국민들의 판단 기준이 옳고 그름보다는 이익에 더 기울었다는 방증이다. 옳지 않음을 심판한 게 아니라 이롭지 못함을 심판한 셈이다. 이런 흐름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7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로 우리가 어떤 국가를 갖게 된 것인지를 되돌아보면 이번 선거의 의미를 거꾸로 재해석해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사건을 깔아뭉개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유가족을 노숙자라 부르고, 군대 간 자식이 맞아 죽어가는, 그런 정권이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그런 정권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줌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면죄부를 주고,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게 과연 합리적인 국민의 선택인가.

무능하고 비전 없는 야당, 당연히 심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올바름엔 눈감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게 되면 우리한테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도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이로움과 올바름을 함께 고려하는 혜안이 아쉽다.

정석구 편집인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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