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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어디 정붙일 데 없나요?” / 이창곤

등록 2014-08-03 18:33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이른바 ‘미니 총선’의 후폭풍이 거세다. 방향은 야쪽이다. 유력 정치인들이 줄줄이 떨어졌고 사퇴와 은퇴가 이어졌다. 추풍낙엽이 따로 없다. 하긴 ‘야당심판론’이란 평가까지 나온 마당이니 무슨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 ‘갈라파고스 야당’, ‘심판받은 새정치’, ‘민심 못 읽은 야’ 등 보수언론과 여당의 조롱이 바람을 타고 난무한다. 야권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관계라는 게 그렇다. 실망이 잇따르다 보면 숫제 정을 떼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법이다.

11 대 4의 승리를 거둔 정부 여당은 어떤가? “정부 여당이 잘했다고 표를 주신 게 아니”라며 한껏 몸을 낮추는 듯하지만 실상 ‘탈세월호’의 깃발을 더 높이 치든다. “쉽사리 정을 주지 못해온”, 이 독특한 캐릭터의 보수정당 모습은 목불인견에 가깝다.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들겠다”고 하면서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의 의지는 거의 없다. 그저 벗어나고자 할 뿐이다. 세월호 대참사에도 선거 승리를 해내는 그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2012년 이래 선거가 잇따랐다. 그해, 총선과 대선이 있었다. 이듬해 재보궐선거를 거쳐 올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궐선거가 있었다. 대의민주제에서 선거는 늘 있고, 승패를 낳게 마련이다. 유권자의 견지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선거의 승패가 아니다. 선거라는 정치 과정을 통해 얼마나 삶이 더 좋아지는가이다. 때로는 거기까지 못 가더라도 적어도 정당과 정치가 아픔과 뜻을 대변해주길 원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내 뜻을 대변해주고 내 삶을 더 좋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하는, 또는 기억하는 정당은 있는가? 지금 여야 정당이 그러한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100개가 훌쩍 넘었다. 의원을 보유했던 정당만도 40개가 넘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우리네 가슴에 각인돼 있는 정치를 보여준 정당은 어떤 곳인가? 이 나라 유권자가 이름을 기억하는 정당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한마디로 ‘정붙일 정당’이 없다는 게 많은 유권자들의 요즘 푸념이다. “정을 주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에 정붙여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막상 정을 주려니 실력이 안 되고, 믿음이 안 가고, 취향도 아니라 도대체 정붙일 곳을 못 찾겠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푸념하는 유권자 또한 이런 정치 현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제 하고픈 말을 할 때다. 나는 한국 정당과 정치의 발전을 위해선 지나친 정치중심적 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정치는 기실 ‘과잉대표’돼 있다. 몸집에 비해 머리가 너무나 큰 기형적 가분수 형태다. 수준과 실력에 비해 목표와 기대가 너무 높고 비현실적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열망과 기대에 비해 결과는 늘 실망스러우며, 이는 정치불신과 정치혐오증으로 이어진다. 언론의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정치, 중요하다. 골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렇지만 한 사회를 바꾸는 결정적인 힘은 정치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여 할, 지금까지 한 표현을 원용하자면 “정을 붙여야 할” 곳은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이다. 자신의 위치가 한 사회의 어디에 있는지를 자각하고 자신을 옥죄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 내 이웃과 함께 내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바뀔 때 사회 전체가 더 좋아지는지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사회권력’이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 등을 고민할 때, 비로소 정당도, 정치도 제대로 작동한다고 본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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