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 이 사태를 책임지는 사람도, 조직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2008년 뉴욕발 금융위기를, 일본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사태를, 한국에서는 4·16 세월호 사태를 겪으며 국가도 파산 또는 침몰할 수 있음을 국민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명령을 이행하는 데 길들여진 사회는 죽어가는 자기 모습을 지켜보는 환자처럼 좀체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막둥이를 잃은 두 아버지가 순례길에 올랐다. 단원고 2학년 8반 고 이승현군과 2학년 4반 고 김웅기군의 아버지는 7월8일 작은 나무 십자가를 메고 진도 팽목항으로 떠났다. 7월28일치 <한겨레21>의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혼자 세 자녀를 키웠고 특히 엄마의 정을 모르고 자란 막내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승현군의 아버지는 “아들의 마지막 순간을 나는 모른다. 물이 들어와 물속에서 숨졌는지, 문이 닫혀 산소가 부족했는지, 깜깜한 어둠 속에서 얼마나 두려웠을지…. 순례길에서 우리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다”고 말하며 아들 사진을 가슴에 걸고 순례길을 떠났다.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에 내려오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던 명랑한 막내아들의 차디찬 손에 할머니가 지녔던 묵주를 감아주던 웅기 아버지는 기도를 드렸다. “아들의 손을 놓지 말아 주세요.” 순례 8일째 승현 누나는 순례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내일 당장 아버지들이 힘들다고 집에 가자고 하면 뒤돌아보지 않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다. 두 아버지는 이미 한마음이 돼 서로 의지하고 걷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져주지만 나중에 그 수가 줄어들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여정은 아버지가 첫발을 디딘 순간 이미 성공한 것이라 생각한다.” 팽목항에 간들 꿈에 그리던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버지들은 가족을 무능한 죄인으로 만든 나라를 원망하지만 원망의 굴레에 머물지 않는다. 제대로 애도하기로 작정하며 아버지들은 떳떳해졌고 평생을 함께 갈 동지를 얻었고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게 되었다.
파리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도 공연 일정을 바꾸어 제주 순례길에 올랐다. 부다페스트 공연 준비를 하던 중 뉴스를 보고 피할 수 있는 비극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난 그는 몰려오는 무력감을 피할 수 없어, 학생들이 도착하기로 예정됐던 제주항에서 세월호 참사 100일 공연을 한 것이다. 그날 정명화·정경화씨도 대관령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반추하는 애도의 연주를 했다고 한다. 같은 날 밤 서울광장에서는 “네 눈물을 기억하라” 추모 음악회가 열렸고 단원고 2학년 고 이보미양과 가수 김장훈씨가 ‘거위의 꿈’을 불러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이보미양이 생전에 부른 노래를 기술적으로 다듬어 듀엣곡을 완성시킨 것인데 음원작업을 도왔다는 신해철씨 등 음악가들도 이 작업을 하면서 뿌듯했으리라. 그 자리에서 “우리는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지 않으려는 국가를 알아차려 버렸다…. 밥 많이 먹고 지치지 않고 즐겁게 모여서 끝까지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가수 이승환씨의 멘트가 유튜브에 올라 있다.
9·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슬픔을 재빨리 극복해 다시 폭력의 구조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애도의 상태에 충분히 머물러 있기를 부탁하였다. 애도는 충분히 슬픔에 젖어 있는 시간이고 새로운 정치적·윤리적 지평이 열리는 곳이다. 세월호 참사로 가슴 한구석이 무너진 사람들은 100일 탈상 후 다시 삼년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애도의 시간 속에서 겸허한 순례자와 철학자, 과학자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타인과 함께 나누는 자리, 그 애도의 장소는 환대와 생성의 장이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버지들과 국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시민들에 의해 시대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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