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늘부터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청와대의 비서진도 대거 휴가 대열에 합세한다고 합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대통령과 측근에게 충전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기에는 국민의 심사가 편치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도록 정부와 집권당이 뭐 하나 제대로 해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며칠만 해도 답답한 일의 연속입니다. 울다가 기다리다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는 유가족들이 거리에 나서고, 국회를 두드렸습니다. 단식으로 호소하고, 다시 팽목항으로 걷고 있습니다. 생존한 학생들이 백리 길을 걸어 국회까지 왔습니다. 의원들은 청와대로 행진했고, 밤새 비를 맞으며 거리에 섰습니다. 광장에는 주말마다 흐느낌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한 노력은 입법의 관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들끓는 시민들의 요구에 대해 청와대는 아예 빗장을 걸어잠갔습니다. 특별법 제정에 “유족의 마음이 잘 반영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언급은 투표일 이전의 공염불이었을 뿐입니다. 이젠 아예 시간은 망각의 편이라는 식입니다. 대통령의 표정만 점점 환해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전직 국회의장이 점잖게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유족들에게 “눈물의 팽목항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애써 돌리자” 하고, 국민에겐 “노란 리본을 옷깃에서 가슴으로 옮겨 달자”고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국회에 단식농성 중인 유족 앞에 제헌절이라고 풍악을 울리는 게 사려 깊은 처사냐고요.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게끔 무슨 환영할 조치가 내려졌느냐고요. 눈물과 고난이 있는 그 현장, 그곳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특히나 선우후락(先憂後樂)해야 할 지도층이 있어야 할 현장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단식하는 유족들의 면전에서 패악질까지 해대는 자들도 있습니다. “새끼가 놀러 가다 죽은 걸로 왜 난리냐”와 같은 말은 인간이라면 떠올릴 수조차 없는 패륜입니다. 막말을 일삼는 자들이 ‘어버이’와 ‘엄마’를 자칭하다니 기가 막힙니다. 이들의 의기양양함은 바로 대통령과 의원들의 무사려와 몰염치의 그늘 속에서 독버섯처럼 키워져 온 것입니다.
대통령과 여야가 특별법 제정에 합의한 지 오랩니다만, 입법 협상은 지지부진합니다. 세부사항에 대한 이견처럼 포장하지만, 진상조사의 의지와 자세에서 근본적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중에서도 “진상조사기구에 수사권 기소권을 주는 것이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여당의 주장은 어이가 없습니다. 관계기관의 자료제출 거부, 출석 거부에 대비하기 위해서 진상조사위원회에 강제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필수사항입니다. 위원회에 영장청구권을 준다고 법관의 영장심사, 발부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립적 법관이 영장을 심사하기에, 영장 청구가 남용될 위험성도 없습니다. 수사한 기관이 기소하는 것은 특별검사제를 통해 관행화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위원회에 수사권 기소권을 부여하는 데는 아무런 법적 장애가 없습니다. 장애가 있다면,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정치적 장애가 있을 뿐입니다. 그 정치적 의도가 진상 규명을 마디마디 방해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국민적 규탄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사고 전과 사고 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나라로 태어날 수 있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되는 바로는, 전후가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몇 명 각료 교체 외엔 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후안무치와 책임전가의 모습만 더 부각되었습니다. 그러곤 대통령의 휴가행입니다.
국민의 원성을 뒤로하고 떠나는 휴가가 어찌 달가울 리 있겠습니까. 국민보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하지 마시고,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들도록 정치권에서 그 짐을 제대로 떠안고 책임 있게 처리해주기 바랍니다. 휴가기간 동안 진지한 자기점검과 함께, 속 풀어줄 해답을 갖고 복귀하기 바랍니다. 우리 국민도 무작정 인내하지만 않는다는 사실, 현대사의 굽이굽이에 적혀 있는 대로입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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